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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20. 2023

같은 환경 속 다른 선택을 한 우리

다른 길을 걸어도 우리는 같은 목적지를 향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면 애써 바꾸려 하지 말고 본인이 나가라는 뜻이다. 이는 그 집단이 개인의 노력 여부를 막론하고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도 포함한다. 예전에는 이 속담이 해볼 만큼 다 해본 이의 가벼운 발걸음 마냥 후련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지금은 절을 등지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을 중의 표정이 많이 서글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써 노력하고 싶을 만큼, 중은 절을 아주 좋아했을 테니까.  

   

어디선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을 중의 마음으로 나도 어느 공동체를 떠났다. 꽤 오래 몸담았던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말하는 발전 방향에 지친 상태였다. 제시하는 비전은 너무도 달콤하고 이상적이었으나 그걸 행하는 과정에서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지나치게 많았다. 건의해서 바뀔 시스템이라기엔 몸집이 거대했고 무엇보다 내 몸과 일상이 크게 망가졌다. 그대로는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오래 애정해온 곳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할 때였다. 


그곳에는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나이가 같아서였을까, 우리는 유독 말이 잘 통했고 빠르게 친해졌다. 깊은 소속감을 느끼며 너무 좋다고 호들갑 떠는 것도, 왜 저렇게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바도. 선배까지 모두 모여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갈 때면, 우리는 맨 뒷줄로 빠져 간격을 두고 천천히 걸으며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나중에 선배가 되면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 함께 꿈을 나눴던 내가 그곳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도 나와 함께 나왔으면 했다. 가중된 상황을 감당하느라 모든 감정이 극한까지 치달은 그녀를 보기가 안쓰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 끝까지 남아 그 공동체를 바꾸고 싶어 했다. 거대한 시스템을 뒤엎을 수 있을 때까지 힘을 키우고 싶다고.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말이다.


나의 마지막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을 때쯤, 사무실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데 그녀가 뜬금없이 물었다.      

“있잖아.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우리가 만약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일제 강점기?”

“응, 만약에. 우리가 그 시기에, 그 환경에서 자랐다면.”


맥락 없는 질문이었지만 골똘히 고민해보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내 모습을 비추어볼 때, 나는 3.1 운동 때 앞장서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투사가 되었을 것 같다고 했다. “이건 잘못됐어!”라며 위기의식을 느끼고서는. 나는 집단 내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오목조목 원인을 파악하며 바꾸려 드는 편이었고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묵인되는 모습을 참지 못했다. 내 캐릭터를 파악한 그녀의 비유에 웃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은 아마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라를 팔아넘기는 매국노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녀는 분명 당장 눈앞의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참고 인내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봐온 어떤 사람들보다도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그녀의 순응에는 분명한 목적성이 있었다. 그녀가 그곳을 버티는 건 그만큼 강인해서였고 그걸 버티면서도 꺾이지 않고 본인의 뜻을 품어갈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너는 낮에는 모든 변화에 순응하는 척하지만, 밤에는 지하 밀실을 만들어 목숨 걸고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 같아.” 

    

그녀라면 정말 그럴 것 같았다. 독립운동은 한낱 우리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거룩하고 위대한 행위지만, 이곳을 바꾸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봐서는 우리는 결국 둘 다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대로. 지금에 다다라 나는 떠나고 그녀는 남음으로써 서로 다른 선택을 했으나 그 선택을 한 배경만은 같았으니까.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은 동일한 목적 아래서도 나눠 가진 몫이 다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독립을 준비할 때도 한국에서 3.1 운동을 기획하며 앞에서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주도하는 사람이 필요한가 하면, 밤에 일본의 눈을 피해 아이들을 교육하고 계몽하는 사람, 저 멀리 만주 땅에서 타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실행하는 사람, 해외에 이 상황을 알리려 노력하는 사람, 지방 각지에서 들고 일어난 의병 등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모두가 다른 선택을 했지만,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방법에는 맞고 틀린 것이 없다. 절 내에서 고통을 견디며 그곳을 바꿀 스님이 있다면, 절을 떠나 외부에서 바꿔올 방도를 가져올 중도 있지 않겠는가. 그저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길이다. 지쳐있는 그녀의 표정이 안타까워도 그녀가 가고자 하는 길을 진심으로 지지했다.


나는 그 공동체를 떠난 지 오래고 그녀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곳에 있다. 나도 마음 깊숙이 그곳을 담고 있다. 언젠가는 내가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녀가 너무 바쁜 탓에 연락하기도 어렵지만, 그녀가 여전히 꺼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버티고 또 변화시키려 애쓰고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 봐도 서로를 읽을 수 있다고 믿는다. 목적지 어느 저편에 도달할 날을 기다리면서. 그날이 오면 정말 고생 많았다고, 그녀를 포근하게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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