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끓어오름이 내게는 위안이 된다
처음으로 내가 맺은 관계들 안에서 즐거움을 느꼈을 때는 마냥 행복했다. 누군가 내게 웃음이 헤프다고 했을 정도로 많이 웃었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에너지를 얻었다. 내가 밝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 이들이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그 마지막을 마주하게 되는 횟수가 늘어갔다. 어떤 환경이든 영원할 수는 없기에 모두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을 뿐이다. 줄어든 내 마음의 공간은 씁쓸한 미소를 남겼다. 순간을 찰나이며, 후에는 지금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아쉬움이 공존하는 웃음.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모두 섞여버린 무언가 모를 표정.
속상하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홀로 고군분투하며 보낸 하루가 버거웠을 때도, 당장의 내일이 어둠으로밖에 그려지지 않아 절망했을 때도 나는 침대에 누워 엉엉 울었다.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았던 한탄 속의 날들을 이제는 손에 꼽을 수 있게 되었다. 슬픔이 와도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다. 언제 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나밖에 모르며 마음껏 자아를 표현하던 시기는 이미 지나버렸다.
그런 내게 지금까지 남아있는 감정이 있다면 바로 분노다. 옳지 못한 행동을 하고도 뻔뻔하게 가면을 쓰고 있는 개인을 향한 불쾌감, 부조리함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에 대한 분노.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은 지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히려 상대방이 내게 진정하라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런 내 모습이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던 것은 그 이유다. 세상에 아무리 닳고 지쳐 너덜너덜해지더라도 여전히 내 어딘가에 존재하는 불안정한 끓어오름만큼은 남겨놓고 싶다.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나와 세상 사이의 균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