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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20. 2023

기꺼이 변화를 택한 용기의 무게

내가 정의하는 용기란 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는 힘 

요즘 들어 지인의 퇴사 이야기는 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가 됐다.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해서 그 모든 선택이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촬영 일을 그만둘 즈음 비슷하게 퇴사 소식을 전한 언니가 있다. 흔한 업데이트 사이에서 그녀의 근황만큼은 유독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절대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의류 브랜드 직원으로 일할 때 관리자로 있었다. 그곳은 그녀가 대학 졸업 후 가진 첫 직장이었고 일한 기간이 어느새 9년에 다다랐다.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이 그녀의 곁에서 일을 배우고 또 떠나는 동안 그녀만큼은 붙박이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수도 없이 목도한 탓이었을까. 그녀는 환경의 영향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주어진 몫을 해냈다. 눈빛에 늘 결의를 가득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다. 분명 그 전주까지만 해도 발령받은 매장이 바뀌어 새로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었는데.    

  

그녀의 결정은 한 통의 전화로부터 비롯됐다. 사촌 언니가 작은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배워보지 않겠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젊은 애가 도전하지 않고 한곳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면서. 그녀가 당장 벌 수 있는 돈을 지금보다 훨씬 적었지만, 그녀가 훗날 사업을 꾸릴 수 있게 돕겠다고 했다. 그녀는 두 시간 가량의 전화 한 통으로 9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날 결심을 했다. 바로 남편에게 가 그만두겠다고 말한 뒤 그를 설득했다. 어떤 표정도 그녀의 결단을 꺾을 수는 없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그녀가 떠난다는 소식에 다 진짜냐고 놀라며 되물었다고 한다. 나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어느 브랜드로 이직하게 됐냐는 질문에 그녀는 다른 일을 시작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그들이 하는 말은 다 똑같았다.    

 

“너의 그 용기가 부럽다.”     


회사가 쉼 없는 변동을 이어가던 상황이라, 다들 불안해하며 나가고 싶다고 하면서도 누구 하나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녀라고 불안함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실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에게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고 하기엔 보장된 미래보다 불확실함의 비중이 훨씬 컸다. 더욱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분야였다. 같은 상황이 생겼어도 모두가 그녀처럼 결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그녀가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보며 용기에 대해 다시금 정의를 내려봤다. 용기란 무엇이든 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녀는 객관적으로 일을 잘했다. 뭘 해도 믿을 수 있었고, 무슨 일을 맡겨도 똑 부러지게 제대로 된 결과를 가져왔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꾸준히 행해온 능력치로 본인에 대한 신뢰를 쌓아왔을 것이다.


또한 수많은 의심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얼마나 무수히 되물었을까. 할 수 있겠냐고. 후회할 수도 있다고. 어떻게 감당하려고 감히 저 허허벌판을 향해 제 발로 나가냐고.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피어오르는 희망의 불씨를 누르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그 불씨가 더 큰 불꽃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을 테니까. 


그다음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분명 그 미지의 미래를 더 나은 모습으로 일궈낼 자신이 있었던 거고 자신이 현재의 모습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던 거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건 결국 자신을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결단을 내렸다.  

    

이후부터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모든 이들이 달리 보였다. 그들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표정에서 본인을 향한 소중한 믿음과 애정이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그 알맹이를 얻어내기까지 홀로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보냈을지 그려져 가슴이 아렸다. 그들이 겪었을 모든 과정과 결과에 온 마음을 다해 박수를 보내게 됐다. 


모두의 마음속에 한 줌의 용기가 닿았으면 좋겠다.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앞으로 만들어낼 것에 대한 설렘이 더 클 수 있게. 스스로 어디까지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재단할 수 없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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