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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20. 2022

해먹에만 누워도 이렇게 행복한데 세상은 왜 힘들까?

어디든 해먹을 만들고 누울 수 있는 사람 

"언니, 해먹에만 누워도 이렇게 행복한데 세상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멕시코의 어느 도시였다. 나와 민혜가 머무는 숙소에는 작은 해먹이 있었다. 하루를 마친 그녀는 해먹에 걸터앉아 위를 올려다보고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글세... 해먹에 눕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그럼 사람들은 왜 해먹에 눕지 못할까?"


"음, 여러 이유가 있겠지. 누군가에겐 해먹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해먹이 있는데 해먹에 누울 시간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해먹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해먹에 가서 누울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본디 세 번째 유형의 사람이었다. 해먹의 존재조차 모른 채 대부분의 시간을 앞만 보고 달리는 데 익숙했다. 굳이 다른 이의 속도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걸, 세상은 전부 그렇게만 채워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후에야 내 눈앞에 있던 해먹이 보였고, 비로소 그곳까지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만약 우리가 세상을 좀 더 행복하게 바꿀 수 있다면, 내 꿈은 사람들이 해먹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할 순 없다. 누군가는 해먹을 만들 것이고, 누군가는 사람들이 해먹에 누울 시간을 마련해준다면, 나는 마음의 공간이 없어 온전한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여백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것이 내 눈에 밟히는 세상의 모습이자 나의 역할이었다.  

  

-


그곳을 떠난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멕시코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쿠바로 여행을 간 민혜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언니, 나는 지금 쿠바 히론이야. 여기는 별이 정말 많아. 지금은 별을 보면서 언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오늘 해변에서 선베드에 누워 낮잠도 자고 스노쿨링도 했는데,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언니랑 얘기한 해먹에 누울 시간이 떠올랐어. 여행에서만 해먹이 가능한가 싶어서 아주 조금 울적해졌는데, 지금 더러운 옥상 바닥에 흰 티를 입고 누워있는데 확신이 들었어. 우리는 어디서든 해먹에 누울 수 있다는 거야! 무슨 옷을 입었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아. 누구랑 있는지도. 그냥 누워서 달과 별을 보고, 심지어 달과 별이 없어도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 그게 해먹이 되는 것 같아. 여행에서 조금씩 답을 찾아가는 내 모습이 아주 기특하고 놀라워. (중략)'  

   

어디든 해먹이 될 수 있다. 언제든 해먹을 만들고, 해먹으로 향할 수 있는 이의 삶은 그 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꿈을 꾸고 글을 쓴다. 더 많은 사람이 해먹에 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세상이 조금은 덜 힘들고 더 많이 아름다운 곳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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