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들어가는 세상 속에서의 쓰임과 가치
좋은 질문은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내게는 들은 지 10년 가까이 잊히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스무 살 무렵 들었던 대학교 수업에서였다. ‘크리에이티브 제작론’이라는 과목이었는데 교수님은 한 광고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직 임원이셨다. 똑 단발에 세련된 옷차림, 높은 힐, 커리어 우먼의 표본처럼 보였던 그분께서 어느 날 질문을 남겼다.
“다음 수업 전까지 세상에서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오세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처음 듣자마자 떠올랐던 생각은, 세상에 이렇게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많은데 나만 할 수 있는 게 있을 리가. 나는 월트 디즈니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도 아니고, 봉준호도 아니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라기보다 충분히 대체되고도 남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더 가깝다. 나밖에 못 한다고 당당히 무언가를 내미는 건 나의 오만이자 어렸을 적 슈퍼 히어로가 되겠다는 근거 없는 야심 찬 포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나는 끝내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했다. 학기 마지막 수업 날, 더 궁금한 게 있냐는 교수님의 물음에 홀로 손을 들었다. 교수님께서 예전에 하셨던 그 질문, 그에 대한 교수님의 답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교수님은 ‘자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조직된다’고 하셨다. 주변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연결되는 가운데에 자신이 있다고. 꽤나 명료하고도 그다지 거창하지 않은 답변이었다. 나는 모호하게만 여겨지는 대답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마음 한구석에 찜찜하게 남은 채 수북한 먼지가 덮였다. 그 질문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먼지를 걷어내고 나를 일깨웠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제작팀으로 일할 때 내가 맡은 주 업무 중 하나는 밥차였다. 긴 촬영 시간 중 식사 시간이 되면 스텝들은 밥을 먹어야 한다. 건물이 밀집한 번화가거나 도시 주변이면 근처에 식당이 많지만, 드라마 촬영지는 그런 곳보다 아닌 곳일 때가 더 많다. 특히 주위에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어느 지방의 깊숙한 산골이라면 더욱이 밥차가 필요하다.
나는 촬영 일정이 확정되면 밥차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해당 날짜의 스케줄이 비어있는지를 여쭤보고 예약을 한다. 중식인지, 석식인지, 혹은 둘 다인지. 그리고는 각 팀에 요청해 밥차 신청 인원을 파악해 사장님께 전달한다. 당일에도 챙길 게 많다. 식사 예정 시간에 맞춰 사장님이 도착을 해주셔야 한다. 촬영지는 대부분 전국구 이동이고 밥차 사장님들도 이에 따라 움직이셔서 음식 재료를 싣고 오시는 길이 왕복 3~400km가 되는 일도 허다했다. 스텝들이 밥을 먹을 공간도 마련해야 한다. 촬영지와 적당히 떨어져 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공간을 섭외해 캐노피와 테이블, 의자를 세팅한다. 전기와 수도가 필요하다고 요청하시면 이 또한 어디선가 구해와야 한다.
변수가 많은 탓에 촬영 일정이 엎어질 때도 있다. 촬영 전날 밤 10시, 갑자기 촬영이 연기됐다는 소식에 120인분의 밥차 취소 전화를 걸어야 하는 숙제가 주어질 때도 있었다. 일하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다. 그럴 때 천사 같은 사장님들을 많이 만났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내게 왜 촬영이 취소된 거냐 물으시고는 혹시 한파주의보라서 그런 거냐고. 밤샘 촬영 너무 추울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재료는 자신이 어떻게든 해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유독 바람이 매서웠던 날, 휴대폰 너머로 그런 온기가 들려올 때면 나는 밖에 쭈그려 앉아 외로운 불빛 아래 아픈 마음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밥차 사장님들은 1년에 가까운 촬영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연락하고 마음으로 동고동락한 분들이었다. 가끔은 서로 푸념을 늘어놓느라 전화가 길어졌고 그런 정이 쌓여 갑작스러운 요청을 드려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셨다. 작품이 다 끝나고 나는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택한 처음이자 마지막 현장에 대한 마무리였다. 그곳을 뒤로 한지 반년이 지난 어느 주말, 한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지원씨, 잘 지내고 있어?
지원씨가 없으니까 현장 가도 재미가 없고 힘도 안 나. 언제 돌아올 거야?”
일적으로는 더 연락드릴 게 없는 분이었다. 내가 떠난 곳에서 내가 그립다고 찾아주는 것만큼 감동이 되는 게 또 있을까. 여전히 다정한 사장님의 목소리에 늘 죄송하기만 한 상황에도 나를 토닥여주셨던 그분의 마음씨가 떠올랐다. 나는 눈물 날 것 같은 목소리를 감추고 지금은 다른 일을 시작했다고 말씀드렸다.
“그 일은 재밌어? 지원씨가 재밌으면 됐지.
지원씨는 뭘 하든 잘할 거야.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다.”
사장님은 수원에 살고 계셨다. 혹시 수원에 가게 될 일이 생기면 뵈러 가야지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하셨다.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나는 일이 없어도 사장님을 뵈러 꼭 수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연락하라며 마무리된 전화를 끊고 가만히 통화 기록을 바라봤다. 다른 밥차 사장님께 받았던 메시지도 생각이 났다. 내가 보낸 장문의 문자에 그분은 그렇게 답하셨다. ‘제가 밥차를 10년 가까이 하면서 이렇게 정성스레 표현 받아본 게 처음이에요. 정말 감사함을 느낍니다. 뿌듯하네요.’
10여 년 전의 교수님은 모르셨겠지만, 그 학생은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질문의 뜻을 이해했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밥차 담당은 지나쳐 가는 수많은 작은 일 중 하나다. 배우처럼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감독처럼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중책도 아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그 자리를 대신해 똑같이 밥차를 불렀을 거고 사장님은 시간에 맞춰 도착하셨을 거다. 스텝들은 밥을 맛있게 먹고 촬영은 아무 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거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이가 했어도 지금과 똑같은 결이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어느 밥차 사장님께 일의 보람을 심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주어진 일에 진심을 쏟아 일할 수 있고, 그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이 모이고 흩어진다는 교수님의 말씀도 비슷한 뜻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말을 통해, 그녀의 존재로 인해 새로운 인연이 피어나고 일어나지 않았을 수많은 일들이 진행되었을 테니 말이다.
결국 질문의 요점은 어떤 다른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냐보다는 내가 그 자체로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인지에 있었다. 곧 우리가 지속적으로 보내는 매일의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반복되는 하루를 통해 무엇을 창출해내고 있을까. 내가 속한 공동체 속 타인에게 어떠한 역할과 의미를 심어주는 사람일까. 그 실마리는 주위만 자세히 살펴도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없었다면 감히 세상의 모습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나의 작은 날갯짓이 하늘에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온 세상에 나만이 할 수 있는 건 분명히 존재하고 그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