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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20. 2023

안전바 없는 번지점프와 인생의 공통점

매일 번지점프대 위에 올라가 있는 듯한 기분 

마음 맞는 친구와 가평으로 번지점프를 하러 갔다. “해보자!”며 기차를 예약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바닥이 한참 밑으로 보이는 점프대 위였다. 함께 간 친구가 먼저 점프를 시도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한 번에 뛰어내렸다. 그녀가 없어진 빈자리에는 다음 순서인 내가 올랐다. 친구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 당당하게 섰으나... 막상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발을 뻗으려니 움직이지 않았다. 이건 말이 안 됐다. 허공에 몸을 내던지는 건 뛰어내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부터 불가능한 행위였다. 당황스러움에 식은땀이 나려던 찰나, 뒤에서 로봇 같은 무미건조한 음성이 들렸다.  

   

 “자, 뛸게요. 하나, 둘, 셋, 번지-”     


 나는 어색한 듯 웃으며 조심히 뒤돌아봤다. 선글라스를 낀 직원이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저... 진짜 죄송한데, 못 뛰어내리겠어요...

이거 어떻게 뛰어요?”     


이 순간이 일상인 그에게 분명 나 같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으리라. 그는 익숙한 듯 아무런 톤의 변화 없이 다음 대사를 했다.          

 

 “그냥 뛰어내리면 됩니다. 

이번에도 못 하면 그냥 내려가셔야 해요. 하나, 둘, 셋, 번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에 나는 우는 표정으로 다시 정면을 봤다. 지금 주어진 방향은 허공인 앞, 직원이 버티고 있는 뒤, 딱 두 개뿐이다. 그중에서 나는 핑계 없는 직원의 냉정한 표정을 마주할 자신이 더 없었던 것 같다. 빈 곳으로 점차 나의 몸을 기울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뛰어내렸다.


먼저 밑에 내려간 친구가 찍어준 영상을 보면 나는 뛰어내리자마자 오디오가 일 초도 비지 않게 소리를 꽥꽥 질렀다. 강물 가까이 내려갔다가 반동으로 튀어 오르고 떨어지고를 몇 번 더 반복한 뒤 밑에서 나를 기다리던 배에 간신히 올라탔다. 땅을 딛고 나서도 다리가 그 느낌을 기억하는지 30분 정도 후들후들 떨렸다. 그날 내내 친구에게 단언했다. 너무 무서웠고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번지점프는 없다.   

   

그런데 요즘 그때 번지점프를 하며 느꼈던 감정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나 대신 삶이 번지점프대에 올라 있는 기분이다. 이미 뛰어내린 상태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려나. 다른 길을 택하겠다고, 할 수 있다고 호기롭게 올라갔으나 정작 뛰어내린 동력은 긍정적인 의지보다는 떠밀림에 가까웠다. 달리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이걸 하겠다고 여기까지 온 모든 교통비와 티켓값을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었으니까.


번지점프가 다른 놀이기구보다 더 무서운 이유는 안전바가 없기 때문이다. 의지할만한 물체라도 잡고 있어야 마음이 안심될 텐데 지탱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 잡을 게 없으니 떨어지는 속도와 공포감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눈을 딱 감고 이 하강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언젠가 끝이 날 이 변동을 버티는 것. 그게 이미 뛰어내린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이었다. 


수많은 순간이 스쳐 지나간다. 신경 쓰지 않는다고 여겼던 누군가의 합격 소식을 듣고 괜스레 마음 한구석에 불안함이 피어올라도, 잘될 거라는 확신이 없어서 그 마음을 적고 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때도, 이런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이 텅 비어버려도. 해야 하는 건 그저 눈 꼭 감고 버티는 것.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잊고 있던 내 등 뒤의 줄이 떠오르지 않을까. 비록 느끼지는 못해도 무언가 나를 붙잡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날이 오지 않을까.


이 모든 과정이 과거가 되는 훗날, 덜덜 떨리는 다리를 두고 이야기하겠지. 아, 그때 힘들었다. 다시는 못 한다. 그러나 분명 점프대에 오른 결정과 뛰어내린 행위는 후회 없는 뿌듯함으로 기억될 거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다른 점프대 위에 서 있을 수도 있다. 실소가 나도 또 뛰어내리겠지. 차마 뒤로 갈 수는 없어서. 모든 건 그런 식으로 흘러왔으니까.   

   

사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빨리 지금의 번지점프가 끝났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도 눈 뜨고 풍경을 볼 여유 없이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아마 매 순간 마음을 졸이며 살아갈 것 같다. 평생 스릴을 즐기는 대담한 용자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점프대 위에 발을 올려놓을 것이다. 겁 없이 “해보자!”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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