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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20. 2023

나는 타인에게 어떤 감정을 안겨주는 사람일까  

구태여 정의 내리지 않아도 되는 마음들에 대하여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한다. 셀 수 없는 많은 수의 종류 중 내 눈에 띄어 선별된 것만이 나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이사를 오면서 내 방에 최소한의 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전부 거실 책장으로 보냈다. 방의 책장에는 작법 서적과 대본집이 대부분이다. 지문과 대사가 톡톡 튀는 작품들과 플롯을 짜는 방법, 극본을 쓰는 태도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자주 펼쳐보지는 못해도 가끔 책장을 훑어보는 것만으로 내가 어떤 걸 꿈꾸는 사람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최근 책장에 기존에 볼 수 없던 분야의 책이 하나 추가됐다. 특유의 얇은 시집들이다. 드라마 작가 교육원 수업을 들은 첫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드라마를 쓰려면 시를 읽으세요.” 매일 시 한 편을 알림으로 띄워주는 시요일 앱도 추천받았다. 시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행을 만드는 글이라 시 읽는 행위를 생활화하면 제목도 남다르게 뽑을 수 있고 추상적인 의미를 구체적인 주제로 표현해낼 수 있다고 하셨다. 내게는 이게 적어도 드라마를 쓰는 사람의 준비 자세로 들렸다. 그날 밤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제목에 이끌린 몇 권의 책을 골라왔다. 평소 시를 읽는 사람이 아니었던지라 가까운 곳에 시집이 자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방에 어색함이 감돌았다. 흘끗 보는 시야가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 손에 익던 책과는 두께부터 달랐다. 나는 그중 한 권을 꺼내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잘 읽기 어려웠다. 중고등학생 때는 열심히 주제와 시대적 배경, 작가의 숨겨진 의도까지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대로 필기하며 읽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기준이 없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내가 받아들이는 해석이 곧 시의 의미가 된다. 어느 시는 한 문장만으로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고 다른 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의 나열이라 계속 단어를 쳐다보게 했다. 머릿속 여백을 최대한으로 회전시키며 글자 하나하나를 읽어내렸다. 며칠에 걸쳐 다 읽은 내 인생 첫 시집을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책장에 꽂았다.


그러나 다음 날, 그 시집을 꼭 다시 꺼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 봤다고 책장 제일 구석에 둔 그 행위가 내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다른 수필이나 소설, 자기계발서, 경제 경영 서적을 읽으면 타인에게 ‘이건 무슨 내용이야–’ 하고 설명할 수 있었다. 내용 습득에 완수했다는 일종의 성취감도 함께 찾아와야 마땅하다. 하지만 시집은 그러지 못했다. 다 읽었지만, 결코 읽었다고 할 수 없었다. 그 수많은 시가 어떤 말과 의미를 담고 있는지,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썼는지, 도저히 규정할 재간이 없었다. 시집을 다시 꺼내면 전날 느꼈던 것과는 다른 무수한 표현이 나를 사로잡을 터였다. 모든 시를 줄줄 읊을 정도로 외우면 감히 그 시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필기가 빼곡했던 그 시들은 과연 내가 아는 것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 걸까. 읽은 것도, 읽지 않은 것도 아닌 그 모호함의 감정이 괜스레 반가웠다.     


커가면서 봐온 모든 게 모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위 사람들도 그랬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손들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몇이나 될까. 친한 것과 안다는 건 다른 이야기다. 모든 마음이 동할 수는 없다. 하나쯤은 공유하고 싶지 않은 내면 깊숙한 비밀도 있을 거고, 그가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앞에서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지도 잘 모른다. 친구일 때와 연인일 때와 가족 앞에서와 사회 생활하는 회사 안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자아를 갖췄다. 내가 아는 그의 모습은 일부일 수밖에 없다. 마치 드라마 속 악역 캐릭터와도 같다. 예전의 악역은 한없이 나쁘기만 했다면 요즘은 오히려 응원하고픈 인물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악행의 당위성이 될 순 없지만, 그들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면모를 그려준다. 그런 걸 보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돼서 마음이 저릿하다. 맘 편히 욕하지도 못한다. 모호하다는 건 그만큼 입체적이라는 뜻이다.    

  

입체적인 무언가를 설명할 능력이 없는 나는 모든 걸 감정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시에 대한 감정, 책에 대한 감정, 익숙한 사물과 사랑에 대한 감정.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 대한 불안한 마음은 어차피 평생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섣불리 유약한 나의 단어로 규정하기보다 다른 경우에 대입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가방에 그를 넣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이 시집이 내 가방에 있다면 어디선가 꼭 한줄기의 바람이 불어올 것 같아. 이 책은 글이 재밌어서 종일 나를 피식 웃게 해주겠지. 이 사람을 품고 다닌다면 나만의 대나무숲을 가진 기분일 거야.


오늘 나는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일기장과 시작과 끝을 함께 느끼게 하는 한 권의 시집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들을 데리고 내게 늘 확신을 심어주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궁금하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얼굴 모르는 이의 가방 속에 어떤 색과 향이 되어 남아있을까. 나는 어떤 감정을 안겨주는 사람이 될까. 그건 내가 정할 수 없지만, 그저 나를 담고 있는 이의 얼굴에 잠시나마 잘 가고 있다는 안정감이 물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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