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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재쌤 Sep 01. 2020

무엇이든 다 태워드립니닭

전쟁의 승자는 '나'다

기다림은 한국인에게 크나큰 고통 중 하나이다.

우간다에는 우리나라 고속버스와 비슷한 대형 버스가 있다.

버스에는 80명까지 들어갈 수 있으며, 크리스마스 같은 큰 명절에는 100명도 태운다는 속설이 있다.

사실 이 버스 정원은 40명이지만 바닥에 앉고, 출입구에 앉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버스를 한 번 타면 6시간 이상 가야 했다. 긴 거리를 가야 했기에 전날 밤에 잠을 안 자고 버스에서 기절해야 했다.

운이 좋게 깊은 잠에 들었는데 입을 벌리고 잔다면?

꿈속에서 바퀴벌레를 먹는 꿈을 꿀 수도 있다.

이것은 현실이니 차라리 꿈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원래는 적게는 한 시간, 길게는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운이 좋은 날에는 바로 출발하는데 2년간 살면서 딱 한 번 바로 출발했다.

그때는 자리가 이미 만석이었기에 바닥에 앉았지만 그래도 바로 출발한 것에 감사했다.

뭐 6시간쯤이야!


버스 안

출발 후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자리가 생겨 의자에 앉았고, 그때부터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출발 전 물을 많이 마신 것이 문제였다.

참아보려고 했지만 내 다리는 이미 꼬일 때로 꼬여져 있었고 흰자는 뒤집히기 일보직전이었다.

괜찮아, 4시간만 더 가면 되잖아. 버틸 수 있잖아? 그렇지?

사실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기절해야 했다.


다행히 잠에 빨리 들었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집에 불이 나고 있었다.

'에이 설마..'

도착할 때쯤 되어서야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밑을 볼 자신이 없었다.

'이 나이에 바지에 지도를 그린다고?'

눈을 감고 바지를 만져보았다. 다행히 축축하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우간다에서 오줌싸개 외국인이 될뻔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고통이 사라졌지만 행복도 잠깐이었다.

종아리가 따가워서 만지려는 순간 바늘에 찔린 줄 알았다.

놀라서 밑을 보니 웬 닭 한 마리가 내 종아리를 쪼고 있었던 것이었다.

얼마나 많이 쪼았는지 한 번만 더 쪼면 피가 날듯이 빨개져 있었다.

나도 공격을 하기 위해 발을 계속 둥둥거리며 위협을 했지만, 이 행동은 그 닭을 도발만 할 뿐이었다.


다행히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웃으며 닭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면서 끝이 났다.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고 그래도 또 쪼일까 봐 다리도 내리지 못하고 아주머니에게 슬쩍 다리를 올렸다.

아주머니는 그런 내가 귀여우셨는지 내 다리 위에 손을 살포시 포개고 잠에 드셨다.


아주머니는 내리실 때 한 손에는 닭을 들고 웃으며 “미안” 하시면서 내렸다.

'뭐야.. 닭 주인이 아주머니였어?'라는 배신감이 들었다.

'그럴 거면 미리 때려주셨어야죠...'

이렇게 닭과의 전쟁도 끝이 났다.


버스의 위대함은 닭에서 끝나지 않았다.

돈이 되는 것이나, 돈이 안 되는 것이나 다 태우는 이 위대한 버스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찾고 싶다.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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