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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angPolang Feb 15. 2019

장례는 남겨진 자들을 위한 것

반려동물을 떠나보낼 때 (1) 

7. 펫로스 중에서


옆 마을에 갈 때, 우리는 마을의 공동묘지를 가로질러서 가곤 했다.

공동묘지라고 하면 으슥하고 공포스러운 것을 상상하겠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새들의 노랫소리와 바람소리를 벗 삼아서 걸을 수 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원이었다.


도심 주택가의 영국 묘지
반려견과 방문한 영국 묘지
반려견과 묘지를 방문할 때는
1. 줄을 반드시 착용하고 (출입을 금하는 묘지도 있다. 입구의 안내문을 참조할 것.)
2. 묘에는 반려견이 접근하거나 대소변을 보지 않도록 하고
3. 배설물은 반드시 치워야 한다.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가 여기에 잠드셨어요.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고, 언제 태어나서, 이런 삶을 살다가 이런 이유로 우리 곁을 떠나셨어요. 그렇지만 남겨진 우리는 아버지를 많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어요."


묘비문들을 읽다 보면 이 곳에 왔다가 가던 날까지의 어느 누군가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벤노와 체리코크는 그렇게 묘지공원을 지날 때마다 왠지 숙연했다. 

묘비 앞에 가면 멈추어 가만히 묘비를 쳐다보다가, 또 다음 묘비 앞에 가서 조용히 멈춰 묘비를 바라보다가...... 그런 아이들과 나도 속도를 맞춰 걸으며, 하나하나 묘비에 적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 그러셨군요.' '아, 어쩌면 좋아요.' 하며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왠지 그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반려견과 방문한 영국 묘지
반려견과 방문한 영국 묘지

아주 오래전에 일본 도쿄의 외곽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조용하고 아늑한 주택단지였는데, 마당에 가족묘가 있거나 주택 단지 내에 묘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생소함에서 오는 '놀라움'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묘지'라는 개념은 차를 타고 여러 시간을 달려가야 하고, 도착해서도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산 자의 영역과 죽은 자의 영역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었다. (도심 인구 밀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묘소'라는 것은 추석 등의 '이벤트'가 있을 때 찾아가는 곳이었고, 묘소에 찾아간다는 것은 복장부터 시작하여 챙겨야 하는 것이 아주 많은 번잡하고 무거운 절차였다. 다른 모습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 마을을 방문한 순간, 뭔가 번쩍했다. 

'그래, 왜 그래야 하지?
흔히 말하듯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라면,
왜 죽음을 그렇게 멀리 분리해놓아야만 하는 거지?'
주택가에 함께 자리하고 있는 묘지 - 영국

화려한 장례식을 하든, 무엇을 입고 떠나든, 얼마나 요란하게 떠나든, 어디에 묻히든...... 떠나는 이가 고민할 일은 아니겠지.    


바로 조금 전까지 같이 슬퍼하고, 감정을 나누고, 함께 내일을 걱정해주다가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 

'이 모든 건 이제 오롯이 너 혼자의 몫이야. 지금부터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어.' 

라는 세상과 작별하는 사람의 표정.


고민들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하는 존재를 잃었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의 가장 첫 단계는 '부정(Denial)'이다.

사랑하는 존재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즉각 받아들일 수가 없다.

감정적으로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나의 뇌에 반복해서 감각적으로 그 사실을 인지시키는 과정, 시간을 갖고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장례'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장례는 남겨진 자들을 위한 것이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지금까지 함께 일상을 공유하던 그 습관까지 같이 묻어버릴 수는 없는 거니까.  

좋은 일이 있을 때, 슬픈 일이 있을 때, 함께 웃고 싶을 때, 울고 싶을 때, 고민이 있을 때,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날, 그냥 문득 보고 싶은 날, 사무치게 그리워도 만날 길이 없을 때 찾아갈 수 있는 곳, 남겨진 이가 마주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의 무덤뿐이다. 

마음이 소용돌이치고 기댈 곳이 없을 때, 찾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정신적 위안이 된다.

그렇다면 연휴가 아닌 이상 찾아갈 엄두도 낼 수 없는 곳보다,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있는 것이 더 낫지 않아?


영국에 방문했을 때, 지인의 가족이 돌아가셨고, 그분은 생전에 살던 자택의 바로 길 건너 묘지에 묻혔다. 

그분의 가족들, 이웃들, 친구들은 어느 날 오후 문득 떠난 이가 그리워질 때면, 작은 꽃다발을 하나 손에 들고 옆집에 놀러 가듯이 가볍게 그녀의 묘소를 찾아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온다. 

거의 모든 마을 주민들이 세상을 떠나면 같은 곳에 묻히기 때문에, 방문한 길에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네 친구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딸, 친절하게 대해주던 이웃 아저씨까지 만나보고 돌아온다.

묘지가 그리운 이들이 모여있는 사랑방이 되는 셈이다. 

 

반려견과 방문한 영국 묘지


내가 가장 처음으로 사랑하는 반려견을 잃은 것은 일곱 살 때였다.

나와 함께 자란 아이. 

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였고, 나는 그 아이를 볼 수 없었다.

어른들은 내가 반려견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왜? 내가 어린아이라는 단지 그 이유로. 

그러나 그러한 결정은 내가 반려견을 마음으로 떠나보내는 과정을 매우 몹시 아주 심히 어렵게 만들었다.

어른들이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다루는 데 서툴었던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주지도,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렇게 쓸쓸하게 보내야 했다.

이미 땅에 묻힌 이후에야 무덤을 꾸미고 꽃으로 장식해주었지만, 그것은 남은 자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일 뿐.   


일본에는 돌아가신 분을 마치 잠을 자듯 이불에 눕혀 방 안에 모시고, 방에서 함께 날을 보내는 장례 절차가 있다. 츠야 (通夜)라고 한다. 

'그렇구나, 이제 널 보내야 하는구나. 이제 더 이상은 너와 이야기를 할 수도, 너와 눈을 마주치고 웃을 수도 없구나'라는 것을 곁에서 시간을 두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차분히 시간을 갖고 마음을 정리하며, 그가 눈을 감기 전에 미처 전하지 못한 '미안함, 사랑, 후회' 등의 내 마음을 표현할 마지막 기회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상실의 슬픔을 감당하기에는 이 편이 더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채 되기도 전에, 갈라놓듯 서둘러 수습하여 영안실에 안치했다가 그것이 마지막이 되는 것보다 말이다. 


함께 했던 아름다운 시간을 되새기고, 감사하고, 미처 다루지 못했던 감정을 다독이고, 사실을 수용하는 등 계단처럼 하나씩 밟아나가는 이별의 단계들은 매우 소중하다. 건너뛸 수 있는 단계는 없다. 

어느 한 단계라도 소홀하게 대하거나 부정하면, 그것은 그대로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생각하지도 못한 요상한 타이밍에 이상한 모양새로 튀어나와서 인생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러니까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애틋하게, 다독다독, 어루만지며, 토닥토닥.  


이미 여든을 훌쩍 넘긴 지인이 있다.

80여 년 동안 무탈하게, 평생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퇴직하는 날까지 즐겁게 일했고, 주변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지금도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회를 보러 먼 도시로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에너지 충만한 그녀다.

그녀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난 정말 좋은 인생을 살았어. 지금도 매일이 즐거워. 그렇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해도 그것도 좋아. 아쉬운 것도, 후회도 없어. 나이가 들면 아무리 건강해도 젊을 때와 다르지. 여기저기 나사가 하나씩 헐거워지기 시작하면, 육신이 고단해지는 거야. 난 모든 생명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천국이니 뭐니 확인할 수도 없는 거,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야. 그냥 흙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지 않아? 지금 영원히 잠들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거야. 양팔을 활짝 벌리고 날아가는 것처럼 자유로울 거야. 상상만 해도 신나는데? 너희 강아지들은 정말 멋진 삶을 살았어. 벤노와 체리코크가 살아온 시간을 한번 돌아봐. 얼마나 근사하니? 17년 이상이라는 개에게는 긴 시간을 그렇게 더할 나위 없이 누리다가 가는 아이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어? 그러나 시간이 되어서 육체가 피곤하여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면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야. 너는 많이 슬프고 그립겠지만, 벤노와 체리코크는 나와 같은 마음일 거야."    


후회도 미련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란 어떤 걸까? 

마지막에 나도 진심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으려나?

벤노와 체리에게 삶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느낄까? 

Generally, by the time you are Real, most of your hair has been loved off, and your eyes drop out and you get loose in your joints and very shabby. But these things don’t matter at all, because once you are Real you can’t be ugly, except to people who don’t understand. - Velveteen Rabbit
털도 눈도 관절도 다 닳고 해어져도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진짜가 되면. 

그런 것일 테지.

Velveteen 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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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반려견과 대화하고 있나요?>의 저자

    국내 최초/국내 유일의 국제 인증 반려동물 행동심리 전문가  

    반려동물의 감정(Feeling)과 니즈(Needs)에 공감하는 교육을 알리며 

    반려동물 교육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동물행동심리연구소 폴랑폴랑의 대표로 

    동물과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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