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langPolang Jan 13. 2019

편향일까 무지일까?

왜 너에겐 보이지 않아?

챕터 1. 벤노와 체리코크의 북유럽 여행 이야기 - 에세이 중에서 


아이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치료해야 할 질병이었다. 아이의 잠꼬대도, 보호자의 노이로제도, 치매도 아니었다.     

앞이 캄캄했다. 증상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이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를 매 순간 느끼며 일주일이라는 암흑 같은 시간을 보냈다. 영상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수의사들에게는 그 고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이가 그렇게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계속되는 검사들로 아이는 또 다른 고통들을 감당해야 했다.

수백만 원의 검사와 진료를 거듭한 이후에도 수의사들은 "치매인 것 같다, 그냥 잠자면서 꼬물대는 것일 뿐이다, 별 이상이 없다" 등의 이야기만 반복했다.

의미 없는 검사들로 고통 중에 있는 아이에게 또 다른 고통을 얹어주고 있는 것뿐이었고, 그 수의사들에게서 진단이나 치료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뚜렷한데 왜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내 머릿속이 어떻게 된 걸까? 

나는 같은 영상을 해외에 있는 수의사들에게 보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클리닉에서 일하는 수의사들이었지만 "바쁠 텐데 정말 미안하지만, 이 영상을 좀 봐줄 수 있겠어?"라고 요청하자, 그들은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영상을 본 그들은 깊은 탄식을 지으며 마음이 아파서 어쩔 줄 몰랐다.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아이의 고통을 본 것이다. 내 몸이 아픈 것처럼 그들은 아이의 고통을 읽었다.


그들은 영상을 보면서 아이의 몸에 일어나는 일련의 증상들을 정확히 읽었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는 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들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에게 아이의 이력들을 묻기 시작했다. 

가능하다면 모든 자료들을 모아서 보내달라고 했다. 

내가 대학 동물병원에 제출했었고, 그들이 '보호자가 뭘 모르고 보낸 불필요하고 진료에 도움이 안 되는 자료'라고 했던 그 내용들을 모아서 보냈다. 


타국에 있는 그들이 직접 진료하지 않은 개의 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기나긴 이야기의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의 진단이 옳았다.

 

이건 국내 수의사와 해외 수의사의 차이, 또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가 아니다.

아픈 아이를 안고, 대학 동물병원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동물병원을 뛰어다녔다.  

국내에서도 체리코크를 도울 수 있는 실력 있는 수의사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만날 수 없었다. 

해외의 모든 수의사들이 이들처럼 실력이 출중하고 마음을 다해 사람을 돕는 것도 아니다. 다만 좋은 인연이 닿았다.


그들은 내가 정리해서 보내준 자료와 영상이 아이의 병을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이 정도로 진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보호자는 드물어. 체리코크는 운이 좋은 아이야. 네가 보호자라서." 


이들 수의사 중 한 명이 저녁 시간에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걱정이 되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잠을 푹 자도록 해. 체리코크를 도우려면, 네가 우선 숙면을 취하고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것 잊지 마. 잘 자고 내일 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기도할게."

시차를 생각했을 때, 그녀가 새벽에 일어나서 그 시간에 나를 생각하며 메시지를 보내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바로 전에 

대학 동물병원 수의 내과 교수로부터 

"개가 살아봐야 2-30년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새벽에 응급실로 전화하고 뛰어오고 하면서 사람 피곤하게 하나? 개는 어차피 죽는 거지만, 인간관계 망치지 마라."

라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기에,

자신의 환자도 아닌 타국의 한 반려견과 그 보호자를 위해서, 마음으로 걱정하고 살펴준 그 수의사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주면 되는 거야." 


체리는 만 열세 살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체리코크를 본 사람들은 아무도 나이를 믿지 않았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하루 종일 산과 들을 뛰어다니고도 피곤한 줄 모를 만큼 건강하고 활기찬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뒤틀리고 경직되는 고통을 겪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확히 되짚어보자면,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악몽이 아니었다.

Disasters don't just happen. They're triggered by a chain of critical events.
참사는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일련의 결정적 사건들이 모여 참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Seconds From Disaster' 중에서 

일련의 불운들이 연이어 일어나며 어느 한순간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건강하고 활력이 넘쳐서 병원에 갈 일이 없었던 체리였건만,  

그저 1년에 한 번, 가벼운 마음으로 들린 일상적인 건강 검진이었던 어느 날.

그 날이 불운의 첫 시작이었다.

    

게시된 모든 글, 영상, 자료 등은 게시자의 고유 저작물입니다.

저작권과 일체의 권리는 게시자에게 있으며, 무단 복제/이용을 금합니다. 

공유 시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히고 링크와 제목, 게시자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당신은 반려견과 대화하고 있나요?>의 저자

    국내 최초/국내 유일의 국제 인증 반려동물 행동심리 전문가  

    반려동물의 감정(Feeling)과 니즈(Needs)에 공감하는 교육을 알리며 

    반려동물 교육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동물행동심리연구소 폴랑폴랑의 대표로 

    동물과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전 12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