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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angPolang Jan 13. 2019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

경로 이탈

챕터 1. 벤노와 체리코크의 북유럽 여행 이야기 - 에세이 중에서 


새벽 1시 무렵이었다.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둔탁하게 몸을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게 무슨 소리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소리는 나의 반려견 체리코크의 비명이었다. 

체리가 오른쪽으로 몸통이 꺾인 상태에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을 껄떡이고 있었다.

누군가 체리의 몸을 오른쪽으로 접어버린 것처럼, 체리의 목, 오른쪽 앞다리와 몸통, 오른쪽 뒷다리가 일그러진 듯이 오른쪽으로 수축된 채 경직되어 있었다.

오른쪽은 팔, 다리, 몸통 할 것 없이 모든 근육이 위축되고 뒤틀렸고, 온몸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으며, 동공은 커다랗게 확장되어 있었다. 

체리의 의식은 또렷했다. 눈과 표정이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체리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도움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원인도 알 수 없고 너무나 갑작스러운 체리의 고통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수분 후 경직되었던 체리의 몸은 마치 단단히 걸려있던 자동 걸쇠를 누군가 해제한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안도할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고 애쓸 시간도 없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대학동물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걸어, 일어난 일과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를 데리고 뛰어나갈 준비를 했다.

'지금 병원으로 와라. 준비하고 대기하고 있겠다.'라든가, 아니면 '지금 상황에서는 이렇게 대처하는 것이 낫다.'라든가, 병원에서 보호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설명해 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보호자가 알아서 판단하세요. 병원으로 올 거면, 도착해서 데스크에서 호출하시면 됩니다.'

이것이 전화를 받은 응급실 수의사가 한 말의 전부였다. 


체리의 이상 증상은 불시에 시작되었다가 불시에 진정되었다. 그리고 다시 또 불시에 시작되었다.

언제 또 시작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만약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그 자리에서 이 증상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진단을 할 수 없거나 치료가 지연될 것이 뻔했다. 진단과 치료가 지연된다면, 그만큼 아이의 고통은 더 길어질 것이고, 그건 위험했다. 

일분일초가 급했다.


통증을 신속히 제어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통증을 제어하지 못하면, 통증이 주변 장기들을 파괴하기 시작할 것이고, 장기가 손상되면 결국 사망에 이르기 때문이다. 

치료를 앞당길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병원에 가기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담아가자고 생각했다.   


다시 체리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할 때 나는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아이가 끔찍한 고통을 겪는 순간에, 옆에서 도움을 주는 건 고사하고, 카메라를 들고 있어야 하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로써 병원에 도착하면 즉시 수의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촬영한 영상을 공유하기 편하도록 유튜브에 올린 다음, 전화로 연락했던 대학동물병원을 포함하여 몇몇 수의사들에게 링크를 보내고 자문을 요청했다.

그런데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어떤 수의사는 인터넷 접속이 잘 안되어서 영상을 볼 수 없다고 했고, 어떤 수의사는 24시간 운전을 하는 중이었으며, 어떤 수의사는 하필이면 그때 휴대폰이 망가졌다. 하필이면 링크를 받은 사람들이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어떤 수의사는 영상을 보기는 했는데, 뭘 봐야 하는지 딱히 모르겠다고 했다. 


체리를 데리고 대학동물병원으로 뛰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진료를 기다리면서, 담당 진료과 계정으로 촬영해 둔 동영상과, 아이의 이력과 상태, 추정 가능한 원인, 증상의 변화 등을 정리한 파일을 함께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체리코크의 증상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보낸 영상들과 내가 정리해서 보낸 파일 정보들이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영상에서는 뭐가 이상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받은 파일들은 진료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내용들이다. 보호자가 관련도 없는 내용들을 끌어다 설명하고 있다."


나는 체리를 며칠간 대학동물병원에 입원시키기로 결정하였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이유는, 통증을 컨트롤하기 위해서였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아이가 고통을 느끼고 있는 이상, 적절한 진통제를 찾아서 아이의 고통을 컨트롤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진료의 가장 기본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원인 모를 고통을 겪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는 것은 옳지 않았다. 

두 번째 이유는 수의사들이 체리코크의 증상을 직접 보아야 원인 파악이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상을 촬영했고, 아이의 몸이 오른쪽으로 심하게 뒤틀리며 경직되는 것이 뚜렷하게 영상에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병원에서 만난 모든 수의사들이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답변을 한 이상, 아이를 구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치료가 계속 지연된다면, 아이를 잃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 촬영된 영상이라서 잘 와 닿지 않는 걸 거야. 분명히 직접 보면 알 거야.' 

그래서 체리를 입원시키기로 했고, 만에 하나 체리의 증상이 근무 시간을 벗어난 새벽에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서 필요하면 사용해달라고 캠코더를 담당 수의사에게 건넸다. 낮이든 밤이든, 한 시라도 빨리 체리의 증상을 이해하고 원인을 신속히 진단해서 치료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체리는 병원에서 며칠을 보냈다. 


며칠 뒤 수의사들은 이렇게 진단했다.

"말씀하시는 증상을 봤어요. 그거 자면서 꼬물대는 거예요. 보호자가 괜히 걱정하면서 일을 만드는 것 같네요. 아니면 치매일 수도 있어요."

그들은 치매 진단표라며 대여섯 개 문항 밖에 되지 않는 종이를 내밀었다. 

몇 개 안 되는 문항으로 치매를 진단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모든 문항에 답은 '아니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종적으로 '치매'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들의 치매 치료법은 활성 영양제 한 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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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반려견과 대화하고 있나요?>의 저자

    국내 최초/국내 유일의 국제 인증 반려동물 행동심리 전문가  

    반려동물의 감정(Feeling)과 니즈(Needs)에 공감하는 교육을 알리며 

    반려동물 교육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동물행동심리연구소 폴랑폴랑의 대표로 

    동물과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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