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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angPolang Jan 13. 2019

독일 동물병원에서 MRI 검사

이렇게 편안한 걸, 왜 그랬니?

3. 북유럽에서 경험한 그들의 반려동물 의료, 반려동물 문화, 반려동물 복지 의식 중에서


사람이건 동물이건 중대한 건강의 이상이 생겼을 때

거의 예외 없이 들어가는 검사 항목 - MRI

체리코크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남은 방법은 MRI 촬영이었다.

MRI 검사를 논의할 때 대학병원 수의과 교수의 설명은 이러했다.


"체리코크의 나이가 14살로 고령이고, 현재 아프다고 하니, 수면 마취의 리스크를 고려할 때, 검사 후에 상태가 더 악화되거나,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진행할지 여부는 보호자가 결정해라.

검사로 이상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치료가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검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보호자가 결정해라." 


이 상담 결과, 나는 검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설명은 진료하는 사람의 입장만 담고 있다. 만에 하나 사고의 경우, 위험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동물병원 측의 입장을 커버하는데 필요한 설명일 뿐, 보호자가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설명은 누락되어 있다. 

그러니 이 설명대로라면 보호자는 판단을 위해 필요한 정보도 하나 없이, 순전히 '감'이나 '운'에 의존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행여나, 아이의 상태가 악화되거나 사망에 이르게 되면, 보호자는 자신을 원망하겠지.  

게다가 바로 눈 앞에서 몸이 뒤틀리는 아이의 고통도 알아볼 수 없고, 그것을 단순히 '치매'로 진단하는 수의사라면, 수의사 본인의 말대로, 검사 이후 치료가 가능은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시니어 반려동물과 살고 있으며, MRI 검사를 고민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대부분의 보호자가 비슷한 설명을 들었거나 듣게 될 것이었다.


우리는 독일로 갔고, 독일에서 신뢰할만한 수의사를 만났다. 

그리고 체리코크는 MRI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동물병원에서 들었던 블랙 메일에 가까운 이야기는 없었다. 

우리가 독일 동물병원에서 경험한 이야기다. 



첫 진료는 꽤 긴 시간 진행되었다.

수의사는 체리코크의 모든 이력을 질의하고, 자료를 검토했다.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체리코크의 몸에서 일어났을 일을 추적해나갔다.

그는 최종적으로 몇 가지의 가능성을 추려냈고, 각각 검사 계획과 검사 이후의 치료 계획들을 정리하여 설명해주었다. 체계적이었고, 매우 유능했다. 

나는 기존에 동물병원에서 들었던 검사 시 위험성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나이 자체는 숫자에 불과하고, 우리는 정확한 데이터를 갖고 말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는 시니어 반려견들이 수면 마취 시에 위험에 빠지는 인자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 점을 파악하기 위해서 MRI 검사 이전에 시행해야 하는 간단한 검사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우려되는 요소를 정리해서 적어두고, 각각의 대비책과 가능성을 정리하며 지워나갔다.


그 결과 보호자가 이 검사에 대한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너무나 편안한 이 과정이 감사했다.


얼마 뒤, 추가 검사 결과 MRI 검사를 해도 무리가 없겠다고 연락이 왔다. 

혈액검사와 신체검사, 과거 히스토리 테이킹 등을 모두 완료한 후에 

종합적으로 결과를 말해주고 

위험요소가 무엇인지 확인시켜주었다.


진료실에는 이미 모든 약물과 도구가 소독된 트레이에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었다.

시간에 맞추어 수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왔다. 

보호자가 동석하지 못하는 한국의 진료 방식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시작해? 그럼 체리에게 인사만 하고 나갈게."


"나가려고? 아이가 마취되는 걸 보는 게 불편하니?"

"아니. 전혀. 나 여기에 그냥 있어도 되는 거야?"

"물론이지. 네가 불편하지만 않다면, 같이 있어줘. 그래야 체리코크도 마음이 편안할 거야."


MRI 검사를 위해 수면 마취를 하는 과정에 보호자가 동참하는 걸 처음 경험했다.

간호사가 안전하게 체리코크의 등 뒤에서 신체를 지지하고 있는 동안, 수의사는 체리코크의 측면에서 주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체리코크가 엄마를 볼 수 있도록 체리와 마주 보고 서라고 했다.

체리는 수면 마취가 진행되는 동안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고, 나는 평상시처럼 체리를 쓰다듬으며 대화를 했다. 체리코크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수의사는 간호사를 시키지 않고 모든 과정을 직접 체크했다.

주사 직전에 다시 한번 모든 데이터를 검토하면서 MRI 여부를 재검토했고,  

체온부터 심박 등 모든 바이탈 체크부터 세부 사항 검토까지 직접 진행하면서 

간호사에게 하듯이 나에게 하나하나 체크 사인을 주었다. 


드디어 주사제를 주입하는 순간이 왔다. 

그는 나를 돌아보며 “이제 주사제가 들어갈 거야.”라고 생긋 웃어주었다.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체크해 준 것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주사제를 주입했다.

모든 과정은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주사제가 들어가고 체리코크가 마취되어가는 동안

수의사는 정말 다정하게 체리의 코끝을 손으로 간지러 주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곁에서 함께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바이탈과 심장을 한번 더 체크한 다음,

“마취가 잘 되었어. 이제 검사하러 갈 거야. 최소 2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편하게 기다려도 괜찮아. 어디 있을 거니?”라며 모든 과정을 편안하게  진행해 주었다.


몇 되지 않으나, 체리코크와 벤노 그리고 나는 여러 북유럽 국가들의 동물 병원들을 방문해 보았다.

그중에서도 이 동물병원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병원이었다.


거의 모든 동물병원이 사용하는 진료 테이블은 동물이 부상을 입기 쉬운 형태이다. 

그러나 이 병원은 좀 달랐다. 진료 테이블은 크고 안정적이었고, 높이가 자동으로 조절되어서 반려동물의 사이즈에 따라, 진료가 편안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컨트롤이 되었다. 또한 테이블은 소독이 용이한 재질로 미끄럼 방지 매트가 푹신하게 깔려있었다. 

전 스태프들은 반려동물의 언어를 잘 알고 있어서, 언제나 즉각 대응을 했고, 진료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기재를 로봇처럼 정확하고 신속 깔끔하게 소독하고 세정했다. 


우리가 예방 주사를 맞기로 예약을 했던 날은 호명되어 진료실에 들어가 보니, 모든 주사제가 정갈하게 소독된 트레이에 담겨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였다. 

그렇게 완벽하고 깔끔하게 준비가 완료되어 있는데도, 수의사는 주사를 주입하기 전에, 다시 한번 보호자에게 주사제를 확인시켜주었다. 

"지금 주사할 약물은 XXXXXX 00 ml 야. 들어간다." 


간호 스태프들이 진료대 위에 반려견과 같이 앉아서 주사나 진료를 진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반려동물의 언어를 잘 읽고, 의사를 잘 전달했기 때문에, 방문하는 반려견들이 눈에 띌 정도로 스태프들을 좋아했고, 보호자와 스태프, 반려견들 간의 친밀감이 높았다. 


방문하는 보호자들도 매우 매너 있었다. 

보호자들은 언제나 반려동물에게 목줄을 한 상태에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대기했고, 대기실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구획이 정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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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반려견과 대화하고 있나요?>의 저자

    국내 최초/국내 유일의 국제 인증 반려동물 행동심리 전문가  

    반려동물의 감정(Feeling)과 니즈(Needs)에 공감하는 교육을 알리며 

    반려동물 교육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동물행동심리연구소 폴랑폴랑의 대표로 

    동물과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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