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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2025.05.25

by 나침반
2025.05.17

팔당댐이 내려다보이는 장어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처음 찾은 지 이미 10년이 넘었다. 올 때마다 사장님도 반갑게 인사를 해 주신다.


차에서 내려서 할아버지를 부축해 드리며 후문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100살을 바라보고 계시니 경사가 가파른 정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사장님께서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로 준비를 해주셨다. 늘 시키던 대로 주문을 하니 익숙한 반찬이 하나둘씩 식탁에 놓였다. 도토리묵, 김치, 무생채, 야채 무침.


장어구이를 기다리던 중에 할아버지가 꼭 하실 말씀이 있다며 입을 여셨다. 다시 학교에 다니는 막냇손자가 매년 한두 번씩 잠깐 한국을 들어오니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매번 하시는 것 같다.


너무 늦지 않게 장가를 가서 꼭 대를 이어야 한다며 신신당부하셨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먼 이국땅에서 혼자 지내는 손자가 마음에 걸리시는 모양이다.


해방과 분단의 혼돈 속에서 부모님과 두 동생을 뒤로하고 38선을 넘으셨다. 불과 20살 무렵의 일이다. 가족도, 가까운 친척도 모두 넘어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거의 80년이 지났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고향 땅을 밟지 못하는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다.


어제 아침에 인천공항에서 전화드렸다. 짧게라도 좋으니, 애틀랜타에 도착하면 잘 도착했다고 꼭 전화를 달라고 하셨다.


다시 먼 길을 떠나는 손자를 보며 80년 전에 집을 떠나던 순간이 떠오르신 건 아닌지, 문득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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