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와 조망

by Lunar G

산 정상, 한 사내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운무는 바다를 이루고 있고 산은 안개에 가려졌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운산(雲山)의 벼랑 끝 낭떠러지. 남자는 관객을 응시하지 않고 등을 보이고 있다. 침묵에 둘러싸인 남자의 등이 심원한 깊이를 전해온다. 시선이 없는데 시선이 느껴지는 아이러니 속에 그림을 응시한다. 스산함, 고적함, 호젓함, 소연함. 소슬함. 보이지 않는 남자의 눈이 소리 없는 말을 전해온다. 시선을 떨어뜨린 남자가 눈에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Wanderer über dem Nebelmeer_C D Friedrich.jpg Wanderer über dem Nebelmeer_C D Friedrich_1818

이 그림은 독일 화가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한 점이다.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독일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검열할 만큼 경직되어 있었다. 예술을 표현 수단으로 쓸 수 없었던 때, 프리드리히는 풍경을 묽혀간다.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라 추상이 가미된 기묘함을 그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 작품이 정치적 평가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 프리드리히는 그렇게 그만의 돌파구를 찾아낸다. 그래서일까.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사색하는 화가, 철학하듯 붓을 움직이는 화가, 경계를 허무는 화가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시대가 암울해지면 예술가의 영혼도 사위기 마련이다. 현실성 없는 몽상가, 이기적인 비현실 주의자, 유약한 도망자. 그게 예술가들을 보는 세인의 눈이 아니던가. 생활이 풍요로운 시절에는 영혼을 풍성하게 해주는 시대의 기수로 불릴 수 있겠지만 호구지책을 고민하는 퍽퍽한 삶에 시달려야 하는 시절의 예술은 거추장스러운 물건에 불과해진다. 철학, 미술, 음악, 소설, 시, 조각.......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영혼도 물질도 궁핍한 시절, 경제적 가치 창출로 이어지지 못하는 예술은 무용한 바위에 지나지 않을 터. 가슴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은 예술가의 혼을 갈급하게 하고, 손을 움직이게 만들고, 살아있음의 흔적을 새기게 할 것이다. 그 연장선 속에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뜻의 작품, <Wanderer über dem Nebelmeer>이 놓여 있는 게 아닐까.


건너편의 산 정상이 아닌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읽어내 본다. 안개 위로 암울한 시대를 지나고 있는 그의 현실을 투영하고 있으리라. 팔짱을 끼고 서서 나와는 먼 세상 이야기인 듯 계곡을 관조하는 게 아니라 그가 돌아갈 안개 낀 뿌연 세상을 조망해 보고 있었으리라.


거리마다 문을 닫는 상점이 늘고 공단은 폐허가 되어가고 시장은 한적해진 지 오래다. 월급은 늘었다는데, 삶은 왜 더 팍팍해져 가는지. 편해질수록 불편함이 늘어가는 이 아이러니는 뭔지. 살아온 날이 많아질수록 인생은 더 모르게 되는 이 불가사의함은 또 무엇인지. 풀리지 않는 의문들 투성이다.


이 혼란을 나만 거쳐오고 있는 것은 아닐 터. 등을 보이는 것으로 관객에게 그 자리를 내준 방랑자가 말한다.


그대들의 한 걸음이 이 안개를 걷히게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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