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는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녀의 환생을 위한 죽음의 신 하데스의 명령이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그 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사랑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다가 때가 되었을 때 소중한 이를 끌어안는 것, 그리하여 사랑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하데스가 내린 시험이었다. 그런데 그 계약은 알고 보면 처음부터 일그러져 있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와 달리 그녀를 구하러 하데스를 만나러 가는 길에 그의 눈은 이미 멀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하데스 앞에 섰을 때 그의 눈에는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신의 명령이 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면 그 명은 무용한 것이었다.
지상을 앞둔 그는 그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고개를 돌린다고 그녀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순간 왜 고개를 돌리게 되었는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의 고개가 그녀를 향한 순간 그녀는 사라져 버렸다. 그가 손을 뻗을 새도 없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는 생각에 그의 심장은 돌처럼 굳어갔다. 그런 그의 앞에서 녹아내리며 그녀는 알게 되었다. 그가 앞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녀를 살리려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넜다는 것을. 뒤늦게 그의 눈이 멀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신은 두 사람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금 사랑의 시험을 거쳐야 했다.
그녀는 눈도 감기고 귀도 들리지 않은 채 다시금 태어났다. 그런 그녀를 태운 배가 검은 강물 위를 떠돌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녀는 그가 강 어딘가에서 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배에 실려 강을 떠돌며 그녀는 그녀도 모르게 쉼 없이 머리를 땋았다. 머리카락을 길게 땋아 내리며 그녀는 기도했다. 이 머리카락이 그에게 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기를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가 무사하기를 내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맞은편에서 홀로 두 명의 배를 끌고 있었다. 눈먼 그녀를 위해 그녀가 탄 배까지 끌 것, 그것이 그에게 내려진 신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노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노를 놓으면 그녀가 탄 배에 닿을 수 없을 것이었고 그러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쉬지 않고 노를 저었다. 지문이 사라져 버릴 만큼 손은 짓물러 갔고 어깨는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둘러싸였다.
먹지도 않고 잠도 못 자고 노 젓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그의 유일한 힘은 달이었다. 그에게 달은 그녀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온몸으로 달빛을 받아들이며 그는 노를 젓고 또 저었다. 노를 저으면 그 배가 자신을 그녀에게 데려다 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달이 영문을 알 수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는 달을 감각할 수 없게 되었고 그리하여 노를 놓치게 되었다.
그 순간 그녀는 마법에 걸린 듯 잠에 빠져들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물속으로 손을 뻗은 그의 손에 무언가가 닿았다. 손에 닿은 그것을 쥐며 그는 익숙한 향기를 느꼈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그녀의 머리카락임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동물적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잠에 빠져 있던 그녀는 머리카락에 그의 손길이 닿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그의 손이 그녀가 꿈에서 길을 잃지 않게 그녀를 이끌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배와 그의 배가 가까워졌다. 그가 머리카락을 끌고 있었기에 그녀는 견딜 수 없는 두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눈은 뜨이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 간신히 의식을 붙들어 두고 있었고 그의 손바닥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배는 닿을 듯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만큼 그녀의 두통과 그의 어깨 통증은 심해졌다. 어깨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그를 압도하였다. 그의 손에서 조금씩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는 여기까지인가 하고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통은 그녀가 그대로 영원히 잠들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있었다. 순간 바람이 잔잔한 강에 큰 물결을 일으켰다.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배가 물 위에 그가 그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남겼다.
“널 위해 버텨왔어.”
“당신을 위해 살아갈 거예요.”
잠든 그녀의 마음에 담긴 말이 바람에 실려 강에 닿았다.
두 사람의 눈물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손이 그녀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따뜻한 시선이 그의 손을 감싸 안았다. 숨어 있던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바람이 두 사람이 탄 배를 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두 배가 닿았다. 검은 강 위로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물결이 달을 끌어당겼다. 그녀가 눈을 떴다. 그녀의 입술이 그의 손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