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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r G Dec 05. 2023

나의 당신을, 당신의 나를 위한 한 걸음

바다를 앞두고 일기장을 펴 무작정 마음속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다가 문득 신에게 화가 났어.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이 상황 때문이었어. 인간의 의지로 넘어설 수 없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인간은 기도라는 행위를 되풀이해. 모든 걸 걸고 내 삶에 마주하겠으니 당신을 지켜달라고 기도했어. 당신을 건강하게 해달라고 진심을 다해 빌었어. 그것 하나만 기도했는데 왜 이런 상황에 다시 마주하게 하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더라. 당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면서 또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말에 당신에게도 화가 났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나를 탓하기도 했어. 당신이 건강하기만 바란다고 하고서는 당신을 욕심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했기 때문이야.

그러다가 새삼 알게 되었어. 건강을 지킨다는 게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힘든 것인지를 말이야.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 안 되는, 인간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 세상과 운명에 맞서 싸우고 있는 거야. 그 굉장한 전쟁을 혼자 치르고 있는 거니까 지금까지 당신이 업적을 남겨온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힘든 일이고 또 대단한 일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진심으로 모든 마음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 당신의 운명에 마주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나는 그 누구도 받지 못한 기적 같은 사랑에 안겨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나에게는 당신이 아파서, 보고 싶을 때 당장 만나지 못해서, 우리 앞에 놓인 복잡한 상황이 힘들어서 울고 슬퍼해야 할 이유가 없어.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시련에 항상 성실하게 마주해 왔어. 당신이 홀로 성실히 걸어온 시간 전부가 나에게는 사랑이었어. 그러니까 나 아무리 힘들어도 내게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웃는 얼굴로 마주해 나갈 수밖에 없어. 인간의 언어로는 다 담아내기 힘든 신비로운 마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큼은 힘들지 않기를 바라. 그래서 그 사람을 대신해 무엇이건 해 주고 싶어 해. 그렇지만 그럴 수 없어. 그래서 마음을 아파하게 돼. 인간에게는 오롯이 혼자서 맞서 싸워야 할 자신만의 운명의 과제가 있고 그것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당신과 나는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을 더 소중히 하게 하라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라는, 이 사랑을 더 값지게 하라는, 그리고 이 만남에의 의지를 더 강하게 하라는 신의 시험에 맨몸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언젠가 시간이 더 지나면 이 시간의 의미를 더 명확하게 알게 될 날이 오겠지. 신의 뜻이 무엇이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야 해. 그것이 내가 당신을 위해 그리고 당신이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야. 잘 견뎌볼게. 그리고 언젠가 때가 이르면 당신 앞에서 웃는 얼굴로 말할게.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G Klint_Birch Forest_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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