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손가락이
빈 종이 위를
어지럽게 걷는다.
글제, 사랑
게으른 펜은 말이 없다.
사랑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게 없다.
사랑을 꺼내 보니
보이는 게 없다.
쥐려 하면
사라지고
등 돌리려 하면
가까워지고
사랑은
딱 내가 자란 만큼만
자란다.
사랑을
남길 수 있다는 발상,
그건 인간의 교만이다.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사랑을 위한 모든
작위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랬더니
널 그리는 마음
하나가 남았다.
사랑,
신기루가 아닌
오아시스였다.
사랑,
남기는 게 아니라
새겨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