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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다가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거울에 대한 명상.

거울을 본다.
하루에 두 번.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의 움푹 파인 왼쪽 얼굴이 거울 속 풍경으로 스며든다. 저 낡고 습기 찬 거울은 이 오래된 건물의 외벽이 세워지고 화장실이라 불리던 한쪽 내벽에 들러붙은 후 한 번도 들어내거나 깨진 적이 없다. 그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의 한쪽 풍경은 늘 일그러져 있다.

사진출처-pixabay


내 얼굴은 어제보다 더 일그러져 있다. 근데 시방. 너는 누구냐? 이 [살벌한 아침]에 감히 감쪽같이 나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울 속의 너는. 서른일곱이 된 거울 속의 너는 일곱 살 아이처럼 해사하게 웃으며 대답 없이 거울 밖의 내 창백한 입술을 따라 움직이지만 네 입술의 소리는 죽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잠깐이었지만, 거울 속의 너와 나는 달랐다. 우리는 겉모습만 똑같을 뿐 완전히 다른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너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습기 찬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 속의 너는 그랬다. 봐! 우리는 이만큼 똑같지 않냐고. 그래. 맞아! 연탄재를 발로 찼으면 찼지 이제 설득은 그만 할 것이다. 너는 거울 밖으로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

한 시절, 거울 속의 너와 나의 역할을 바꾸고자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삭풍이 불고 있는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에겐 주어진 역할이 있었다. 너는 항상 현명한 선택을 했고 나는 너의 등 푸른 그림자 뒤에서 착하고 순진하기만 했다.

거울 속의 너는 상황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여자의 증상은 남자, 라거나 판옵티콘,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아니면 '밥은 먹고 다니냐?'와 같은 현실적인 질문에도 귀를 기울였다. 나처럼 굳게 앙다문 입술을 깨물며 어깨를 들썩거리며 당황하지 않았다. 너는 단지 거울 속에서 너의 시간에만 충실했다.

몽골의 '타클라마칸'을 헤매거나 중동의 더운 모래바람을 덮어쓰지 않아도 될 너의 고귀해 보이지만 어쭙잖던 시간들은 흘러갔다. 안녕이란 짧은 인사도 없이. 너의 방식이 정답이었냐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거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겠지. 그들은 무수한 자들의 정형화된 인식 속에서 오래된 신화로 남았으니까.

매일 아침 나의 자화상이 깨어난다. 거울은 습기만 찰뿐 깨지지 않는다. 너와 나의 슬픈 자화상, 그 지리멸렬했던 시절들. 거울 속과 거울 바깥의 세계. 바퀴가 없는 단지 끌림으로. 타임슬립. 다시 마음에 삭풍은 불고 어쭙잖게 몰아치던 거울 밖 붉은 수염투성이의 바람은 매우 차갑다. 태어나기 전부터 소리가 죽은 새들은 깃털 빠진 날개를 퍼덕이며 북쪽으로 날아간다.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내 나침반은 방향이 없는데.

'거울에 대한 명상'-소설가 김영하의 소설.


2015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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