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정선 카지노, 민둥산, 김해 봉하마을, 김주익 열사가 영면해 계신 양산 솥발공원묘지까지. 짧았지만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좀처럼 즉흥적이지 않은 나의 이번 여행은, 어쩌다 보니 순례자의 여정이 되어버렸다. 살면서 한 번도 마주 한 적 없던 분들이지만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내 삶에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분들을 내 방식대로 추모했다. 비록 추모의 방식이 서툴렀을지는 모르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이들을 추모하는 것은 숭고한 행위다.
'이 세상에 나쁜 친구는 있어도 나쁜 여행은 없다고'한다. 발길 닿는 곳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깨닫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세상에 첫 발을 내딛던 시절의 두려움과 설렘 가득했던 나를 돌아본다. 잊고 있었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첫사랑에게 고백하고 거절당하던 순간의 담담함이 나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에서 어제 일처럼 생생히 되살아났다.
감당하기 벅찬 삶 앞에 서면 나는 소심한 겁쟁이가 된다. 그 사실을 알지만 피 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더욱더 안으로 숨어드는 마음 여린 철부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유리 같은 내 영혼은 아프고 쓰라렸다. 익숙한 것만 있을 뿐 잘하는 게 없다. 내가 모르는 나를, 나의 원형을 사람들은 가볍게 툭툭 던져댔다. 그것이 매번 상처로 돌아온다.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은 많았다. 선생님, 작가, 과학자, 훌륭한 사람. 나는 당최 무엇이 되고 싶었나?
항상 한 박자씩 늦었던 시간들이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선택과 결정이 지금의 나를 완성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내 서늘한 그림자를 지우며 가지 않았던, 아니 갈 수 없었던 길을 그린다. 여행지에서의 신호등이 없는 고속도로는 내 인생을 닮았다. 가지 않았던 나의 길에 대한 미련이 이정표와 함께 휙휙 지나갔다. 분기점을 지나고 톨게이트를 지나고 황색 신호등에 브레이크를 밟는다.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가고 한적한 마을의 외딴 골목에 접어들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민둥산역의 민박, 김해 천문대 옆의 무인모텔. 그곳에서 보석처럼 쏟아지던 별빛들. 무수한 별빛의 세례를 받으면 한 달, 혹은 일주일 전의 모진 말과 상처는 가볍게 뭉개지고 마음은 평온의 바다를 걷는다. 원수마저 사랑할 것만 같은 따스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여행이 주는 일탈이다.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시간, 거리와 체력의 한계를 느끼던 민둥산 정상. 편견을 일깨워준 정선의 카지노 게임장. 쓸쓸함과, 그리움, 그리고 함께 찾아오는 분노에 공감하던 봉하마을, 그곳에서 울려 퍼지던 님을 위한 행진곡.
인연은 어디 그뿐이랴. 액셀을 밟을 때마다 거칠 것 없이 가슴속으로 밀고 들어오던 도로 위 사방의 풍경들. 말 한마디 섞지 않았지만 평생에 한 번 스쳐 지나는 인연들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엷은 미소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감각적으로 모를 때의 미묘한 공포감. 그 묘한 공포가 주는 자유로음. 이 모든 것들이 더해져 답답한 큐브 속에 갇혀있던 나의 심리적 공간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정답인지를 찾기보다는 몽골에서 또 다른 나의 자아를 찾듯이. 나의 원형을 찾는, 나의 일터는 여전히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공간. 그 거대한 공간을 십육 센티 큐브처럼 줄여버린 시간들.
2015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