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 직장 상사 )
[백수]
여자는 연락이 없다. 문자를 해도 답이 없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말해야 했다. 남들처럼 거짓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속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후련하긴 했다. 삼 년째 백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변하던 여자의 표정이. 에휴, 삼 년은 말하지 말걸. 한 달이라고 할걸. 다음 달 S실업 경력직으로 들어간다고 할걸. 뭐. 이력서는 보냈으니까. 그래 잊자. 뭐, 내 인생이 그렇지. 그냥 잠깐, 아주 잠깐 [행복의 나라]를 다녀왔다고 생각하자. 함께 있을 땐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자정 무렵 여자한테 전화가 왔다. 가라앉은 목소리. 나도 그렇지만. 처음 만났던 호프집에서 만나잔다. 다음날 죄인도 아닌데 식은땀이 흐르고 긴장된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럴 때 말이란...참...눈 딱 감고 붙잡아 볼까. 그치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문을 나서는데 전에 다니던 회사 과장님이 보인다.
"어! 과장님!"
"이게 누군가? 김대리 아닌가."
"여긴 어쩐 일로..."
"응. 거래처 사람 좀 만날 일이 있어서. 요즘 어떻게 지내?"
"뭐, 그럭저럭...지내요."
"내 언제 한번 술 한잔 산다 산다 하면서도...."
"에이 과장님도..."
"나 지난달에 부장 됐다네."
[여자]
오래간만에 바쁜 하루였다. 휴대폰을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문을 닫을 때쯤 문자가 아홉 통이나 와있다. 제비였다. 끝내더라도 한 번만 만나잔다. 뭐, 시작이나 했었나. 안 보면 그만이지. 남들처럼 속물은 아니지만 글타고 평강 공주는 아니잖아. 그럴 생각도 없구. 돈 없는 것은 참을 수 있는데 희망이 없는 남자는 싫다. 근데 이 제비 집요하다. 할 수 없이 약속을 잡았다. 한동안 이 남자 때문에 설레기도 하고 그랬는데 막상 만나려니 착잡하다. 내가 뭘, 기대한 거지. 막상 만나니 할 말도 없다. 상황, 아니 변명이라도 하던가? 남자도 별 말이 없다. 오백 한잔씩 비우고 호프집을 나오는데...제비가 앞에서 걸어오는 남자에게 넙죽 인사를 한다. 근데...어...어?
"작은 아빠?"
"어! 수아야?"
제비랑 작은 아빠랑 아는 사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아 이건 또 무슨 상황인 거니?
"그럼 수아 씨. 잘 가요. 나중에....
제비는 말끝을 흐린다. 나중에 모..어쩌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