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잎소설]백수와여자

by 김인철

[제25화 : 제안 ]


[남자]


공부방 아이들과의 수업은 어느덧 육 개월로 접어들었다. 영어 시간은 매번 도떼기시장 아니면 잠자는 숲 속의 [영어 공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아니 내가 그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선생님들도 아이들의 영어 실력 향상보다는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행정 업무로 바쁠 때면 가끔씩 아이들이랑 놀아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가냘픈 팔에 두세 명씩 올라타면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무엇보다 이 허름하고 작은 공간이 어쩌면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았다.


"제이슨 선생님 오늘 수업 마치고 저 좀 보실래요?"

음마...음마...내가 뭔 실수라도 했나. 수업 시간에 꼬집은 거 일렀나. 이제 나 짤리는겨!


"네? 영어 연극을 해야 한다구요."


푸른학교는 매년 1월경 문화제를 한단다. 시설장님 이번엔 영어 연극을 했으면 좋겠단다. 그리고 그걸 내가 해야 한단다. 헐~ 연극이라고. 그것도 영어 연극을? 이제껏 연극이라곤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베드로 그것도 대사 두 마디 해본 게 전분데. 아웅. 나 못해요. 할 수도 없고. 딱 삼 개월 남았는데 어쩌지. 이제 그만한다고 할까.


"선생님 그리고... ."

"네?"

"혹시 푸른학교 교사해보실 생각 없어요?"

"네?"


[여자]


오후 다섯시 시청 앞이다. 동물단체 회원들과 돌아가며 반려 동물 안락사 반대를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인 시위를 시작한지 사흘이나 지났는데 사람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 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든 공무원들이 나를 힐긋 거린다. 한명은 아는 얼굴이다. 다가온다. 그냥 모른척 지나가라. 휴 비슷한 사람이었다. 지나가던 웰시코기 한마리가 나를 보더니 컹컹 짖는다. 가지 않고 으르렁 거린다.

"얌마, 저리가. 지금 내가 너희 종족들 때문에 이렇게 생 고생을 하는데 짖고 지랄...."

가만 목줄이 있는 걸 보니 주인이 있나 본데 어딜간거지, 멀리서 한 꼬마가 뛰어온다.


"아줌마 죄송해요."

"니 강아지니. 근데 나, 아줌마 아니거든."

"죄송해요. 이쁜데, 아줌마 같아요."

"모냐, 모냐..이쁘다구."

"얘는 이상하게 이쁜 사람만 보면 마구 짖어요."


자식, 한대 쥐어박을라고 했는데 이쁘다니까 용서 해준다.


"아줌마 힘내세요. 얘도 일년전 안락사 직전에 우리 엄마가 입양했어요."

"아줌마 아니라니깐."

"안녕히 계세요."


꼬마는 꾸벅 인사를 하더니 아직도 나를 향해서 짓고 있는 강아지를 안더니 사라진다. 그나저나 이번 달만 소개팅 세 번이다. 쫌팽이, 저질, 지저분, 오만함. 한결같이 다 맘에 안든다. 말 못하는 강아지도 예쁜 나를 알아보는데, 처절한 외로움에 나야 말로 정작 안락사 당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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