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잎소설]백수와 여자

by 김인철

[제 28화 : 파파이스 ]


[남자]


아오! 문화제라니, 연극이라니. 뭘 하지? 다들 연극이랑은 상관없는 '나인 투 파이브'의 샐러리맨들이라 물어볼 친구도 없다. 시간은 벌써 한 달이 흘러버렸다. 두 달 밖에 안 남았다. 발만 동동거리다가 고심 끝에 자주 가는 종합시장에 있는 중원 문고를 찾았다. 구석에 영어 연극 테이프 몇 개가 먼지에 쌓인 채 있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어린 왕자, 행복한 왕자. 그나마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제일 만만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니 죄다 눈만 깜빡거리고 있다. 주인공인 미녀와 왕자를 정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무슨 벌칙이라도 받는 것처럼 죽어도 못하겠단다. 왕자가 미녀한테 키스를 하는 장면 때문이란다. 실은 자기들도 좋으면서. 얌마! 난 더 하기 싫거든. 근데 해야 하거든. 무조건 해야 하거든. 구래야 나 안 잘리거든. 구래야 너네들 내 가냘픈 팔뚝에 계속 매달릴 수 있거든.


"선생님 내일 저녁에 시간 비워둬요?"

"왜요?"

"대표님이랑 면접 보기로 했어요."

"어디에서?"

"종합시장 파파이스에서 볼 거예요."

"네? 파파이스라고요"


음마..음마... 아르바이트 생을 뽑는 것도 아니고 무슨 면접을 햄버거 가게에서 보냐?


[여자]


그날 일이 있어서 제비의 시상식은 가지 못했다. 이번엔 진짜 훈남이라는 친구의 말에 덜컥 소개팅 날짜를 잡아버렸다. 그런데 왠지 소개팅 남자의 얼굴이 낯이 익다. 알고 보니 병원 단골손님 중 한 명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오는 강아지 주인이었는데 개원 초기부터 관심이 있었다고 이번에 정식으로 만나보고 싶어서 어렵사리 친구 통해 자리를 만들었단다. 남자는 매너도 있고 유머러스했다. 무엇보다 키가 컸다. 직업도 회계사란다. 돌아오는 걸음이 나름 상쾌했다. 다음날 병원에 소포가 하나 왔다. 발신인은 제비였다. 뭐지? 새로 쓴 소설이 실린 책 두권이랑 조그만 케이스가 들어있다. 그 안에는 목걸이랑 팔찌도 들어 있었다. 어머나? 슈왈로브스키다. 이거 내가 예전부터 갖고 싶던 건데. 디자인도 딱 내 스타일이다. 작은 엽서도 있었다. 내 덕분에 받은 상이란다. 상금 받아서 맨 처음 목걸이랑 팔찌부터 샀단다. 전부터 꼭 해주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단다. 새로 쓴 소설은 이노마가 주인공인 단편인데 풋, 내가 아는 강아지라서 그런가 막 상상이 되면서 디게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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