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밴드

어쩌다가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오늘은‘즐거운 밴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즐거운 밴드. 중등부 교사인 G샘 부탁으로 푸른 학교 졸업생들이 주축이 돼서 밴드 활동을 시작 한지 벌써 3년 차다. 돌아보니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멤버 간 갈등 때문에 해체될뻔한 위기도 몇 차례 있었다. 위기를 몇 번 넘기면서 많지 않지만 일 년에 서너 번은 공연도 했고 이제는 나름 자리를 잡아서 올해는 중등부를 주축으로 2기를 새롭게 결성했다. 마침 연습실도 새로운 곳으로 옮겼다.


원년 멤버인 창(가명), 선, 진, 그리고 철이가 파트별로 후배들을 가르쳤다. 아직 서로를 잘 알지 못해서 삐걱거리는 면도 없지 않지만 오늘 파트별로 후배를 가르치는 모습은 참 보기에 좋았다. 이대로만 간다면 2기 아이들도 조만간 관객 앞에서 멋진 공연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럼을 맡은 철이는 고등학생이다. 1기 멤버 중 막내다. 올해 형과 누나들이 대학생이 된 뒤로 한동안 연습실을 나오지 않았다.


"너희들 문제는 너희들끼리 풀어."

창이가 철이가 탈퇴를 하려 한다면서 만나달라고 했지만 조금 고민하다 거절했다. 지난주부터 나오는 걸 보니 이야기가 잘 되었나 보다.

“샘, 오늘 저희 술 한 잔 사주세요.”

연습을 마치고 나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베이스를 맡고 있는 선이가 뜬금없이 술을 사달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시 준비로 힘들어했었는데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다. 연습 끝나면 주로 떡볶이 아니면 김밥에 라면이었는데 대학생이 되더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사달란다. 창이, 진이도 마찬가지다.

“그래 오늘은 술 한 잔 하자.”


근처에 방송대 학습관 스터디를 마치고서 종종 찾던 호프집이 있었다. 모교와도 같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폐쇄되고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지이를 비롯한 2기 멤버들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이는 나와는 인연이 특별하다. 초등부를 졸업시키고 중등부를 입학시켰으니. 5년째 학생과 선생으로 만나고 있다. 6학년 때부터 밴드(키보드)를 하고 싶어 했는데 올해 중등부 입학하자마자 밴드에 들어왔다. 요즘은 나를 볼 때마다 11월 27일 노래를 부른다. 얼마 전엔 계약서까지 직접 들고 와서 지장을 찍어야 했다. 올해는 선생님 꼭 결혼해야 한다며 그래야 자기가 맛있는 뷔페를 먹을 수 있다면서.


토요일이라 그런지 오랜만에 찾은 호프집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뿌연 담배 연기로 실내는 혼탁하고 꽤나 시끄러웠다. 종업원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소주 한 병을 시키고 안주를 고르고 있는데 창이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덥석 건넨다.

“뭐냐 이게?”

“오늘이 스승의 날이잖아요. 선생님 선물이에요.”

“.......”

“저희 그렇게 경우 없는 애들 아니에요.”

선이도 한마디 거든다. 아까 술 사 달라는 게 이거였구나 싶었다.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기대치 않았던 선물이라 받고 보니 다소 얼떨떨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나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대학생이 된 그들은 고민도 이전과는 달랐다. 화사한 5월의 축제 속에 가려 있기는 하지만 그들을 죄여 오는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또는 그 이상의 어떤 중압감들을 극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선이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고민이다. 카르페디엠, 오늘을 마음껏 즐겨라.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실상 나는 그 나이 때 그러지 못했으면서. 단지 부러워하기만 했으면서.


요즘은 토요일마다 고민이었다. 몸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무조건 쉬라고 했다. 1기 아이들이야 굳이 내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연습할 수 있었지만 2기 아이들은 아직은 지도해줄 선생님이 필요했다. 창이나 진이에게 나름 역할을 주기는 했지만 버거워 보였다. 삼 년 가까이 밴드 지도 교사를 했으니 이제는 그만해도 될 텐데. 지나고 보면 늘 일은 커져 있다. 오지랖이 넓은 건지도 모른다. 책임감. 맡은 일에 대한 욕심. 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요즘 중등부에서의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세입자 대책위, 프로그램 개발회의, 운영회의, 인문학 강좌 등등 아이들 교육 외에 챙겨야 할 것이 많으니 더러 중요한 사항을 잊어 먹곤 한다.


같이 일하시는 선생님 한분은 부러 일을 만들고 힘들어하는 스타일이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힘들어도 이것을 놓을 수가 없다. 지금 놓기에는 너무 일을 크게 만들어 버렸다. 버거워도 컨디션만 좋으면 괜찮을 텐데 두 눈이 땅으로 쏟아질 것 같은 피로감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술자리는 자정이 넘어서 끝이 났다. 선이가 술이 과했던 모양이다. 자꾸 웃더니 술집을 나와서도 비틀거린다. 창이와 진이가 술 좀 깨고 가야 한다며 어딘가로 향한다. 아마도 피씨 방. 그들을 뒤로하며 택시를 잡았다.


모처럼 술이 몸에 들어가서 그런지 몸이 노근 해지면서 머릿속에선 갖가지 상념이 떠오른다. TV를 켜면 왕년의 월드컵 스타들이 광고에 나온다. 황선홍 밴드 시리즈다. 그들도 우리처럼 밴드를 결성했다. 광고 속 황선홍의 가치는 뭘까? 승리의 가치일까, 아니면 철두철미한 상업적인 가치일까? 조만간 쏟아질 월드컵이라는 홍수가 영 마뜩잖다. 사람들의 환호성. 그것은 마약이다. 마냥 신나거나 한없이 즐거워하지는 말자. 월드컵이 아니라도 우리가 열광하거나 분노할 대상은 곳곳에서 부지기수다.


우리 밴드가 이름만큼 ‘즐거운 밴드’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마음껏 발산하지 못했다. 그들도 안다. 이제는 그들이 선 무대 위에서 마음껏 휘저으며 끼를 발산했으면 좋겠다. 아직은 나도 하지 못하는 그것을 그들이 그리고 그들이 가르치는 후배들이 설 무대 위에서만이라도 마음껏 끼를 발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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