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산행의 안내자 1

누구였을까

by 그리여

산이와 목영이는 언제나처럼 배낭을 둘러메고 떠난다.

입석이라 자리가 없어서 불편했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힘들 줄도 모르고 밤기차에 몸을 싣고 칸칸이 연결된 곳에 걸터앉아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니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유리에 비친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있다.

밤 기차를 타고 온 것은 무박에 1박 2일 일정으로 지리산을 다녀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시골이라 버스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무사히 지리산에 도착했다.

일주일 동안 근무하느라 지친 심신을 지리산에서 풀려고 왔음에도 준비는 미흡했고,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어물쩍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고, 젊음이 깡패던가! 두 친구에게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산은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와야 하지만 그 당시에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준비 없이 그냥 나선 것은 어쩌면 너무나 무모한 산행 계획이었기에 다소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일단은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곳까지만 가자 하고 나섰고, 매주 등산으로 단련된 친구들이라 걷는 것이 빨랐지만, 11월 말에 무슨 생각으로 옷도 그리 두껍지 않게 입고 나선 것인지 그날의 그들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막상 산행을 시작하니 더 올라가고 싶은 마음에 돌아서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새벽 서리가 내려앉은 산길을 따라 한 걸음씩 내디딘다. 90년대 초반, 지리산의 종주 코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 원시적인 모습이었다. 스마트폰도 없고, 등산 앱도 없던 시절. 오로지 손때 묻은 등산 지도 한 장과 발밑의 길만이 그들의 안내자였다.

지리산의 깊은 품속으로 들어서면, 숲은 곧장 밀림처럼 울창해진다. 햇살이 포슬포슬 붙어 있는 나뭇잎 사이로 드문드문 스며들고, 숲길에는 이끼가 더덕더덕 시커멓게 붙은 돌들이 발길을 붙잡았고 스산하고 차가운 바람만이 볼에 닿는 새벽에 나뭇가지들이 스스스 흔들거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우고 있다.

그렇게 맑은 공기에 취해서 걷다 보니 연하천 산장을 지나면서 이제 여기서 돌아서야 할까 계속 가야 할까 잠시 고민을 하였다.

하루라는 시간이 더 있으니 이왕이면 천왕봉까지 가볼까 하고 멈추지 않고 빠르게 나아갔다.


지리산 능선은 대체로 완만하고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끝없이 이어진다.

연하천을 벗어나 능선을 따라 타박타박 걷다 보면 점점 높이 높이 오른다는 느낌이 든다. 숲이 우거져 있어 서늘함에 몸은 움츠러들고 점차 고도가 높아지면서 나무들이 줄어들고 탁 트인 조망이 눈앞에 펼쳐지다가 이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배낭을 짊어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능선을 걷다 보면 이대로 하늘까지 걸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지루하다.

먹을 것도 변변치 않은데 무슨 용기로 나선 것인가 싶었지만 같이 오르던 사람들이 먹을 것을 나눠주고 친구처럼 같이 등반하다 보니 즐겁기도 했다.

사람이 반가웠고 서로가 힘이 되어주고 같이 산행을 하던 시기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산에 가면 낭만과 사람의 정이 있었다.


계속 오르다 보니 같이 가던 일행 아닌 일행이 어느 시점에서 인사를 하고 산행로를 바꾸고, 더러는 힘들다고 더는 못 간다고 되돌아서 내려갔다.

"우리는 하산할 거니까 싸 온 음식이 많으니 가지고 가시면서 드세요"

미안한 마음에 극구 사양하였지만

"무거워서 그러니까 짐 좀 덜어주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조심히 하산하세요"

그렇게 그들은 먹을 것을 챙겨주면서 안전한 산행 하라고 당부하고 떠났다.


산이와 목영이만 어쩌다 보니 정상을 향한 종주를 하게 되었고, 빠른 발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등산로를 따라 쉼 없이 걸어갔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점점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까 갑자기 큰일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옷을 겨울용으로 입고 오지 않아서 한기가 느껴졌다.

렌턴도 없어서 등산로에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희미하게 보였다.

별빛 달빛이 비쳐주는 길을 걸으며 그래도 운치는 있다 싶어 기분이 좋았지만 느긋하게 즐길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길을 잃겠다 싶어 오감을 열고 부지런히 걷는데, 100여 미터쯤 앞에 빨간, 파란 등산복을 입은 사람 둘이 걸어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색깔이 선명하여 그 밤에도 잘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길라잡이 삼아 길을 재촉하여 걸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대단한 등산가인가 걸음이 너무 빨라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인가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자리 잡는다.

코너를 돌면서 놓쳤나 싶으면 어느 사이엔가 다시 나타났다.

거의 따라잡았다 싶었는데 여전히 그들은 100여 미터쯤 되는 거리를 유지하며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2편에서 계속



#지리산 #종주

#미스터리 #야간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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