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식탁, 잊히지 않는 풍경
식탁은 먹는 공간이지만 삶의 흔적. 엄마의 애환. 말하지 못한 사랑과 밥보다 더 무거운 기억들이 쌓여 있다. 우리네 부모님 세대는 대체로 풍족하지 못한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신 게 대부분이셨으리라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없이 살던 엄마는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니까 가구를 장만하셨다.
부지런한 부모님 덕분에 우리 집은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갔다. 물론 나는 그 집에서 살지 못하고 직장을 다니기 위하여 서울로 왔다. 나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었다. 다행히 외국계열 기업에 취업하여 월급은 그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많이 받았다. 덕분에 나는 집안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생활비를 빼고 약간의 돈을 남겨두고 꾸준히 돈을 보내고 적금을 들어서 목돈을 마련하였다. 오로지 목적은 돈을 벌어서 엄마의 어깨에 올려진 짐을 가볍게 해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돈이 없어 허덕여도 절대 손을 내밀지 않았다.
나는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것이 장녀의 소임이고, 가지 말라고 말리던 엄마 눈에서 눈물을 쏟게 하고 서울 온 이유라고 생각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총총총...
그렇게 나아진 형편에 우리 집은 햇볕이 들지 않던 작은집에서 탈출하고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커다란 12자짜리 장롱, 문갑 화장대, 침대, 6~8인용쯤 되려나 여하튼 커다란 식탁을 들여놨다.
그 외 소소한 가구들까지 장만하고 나니 제법 번듯하였다. 작은 나무장만 보다가 어마어마하게 큰 장롱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 안에 들어가 잘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해 여름 더운 날에 들여온 가구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깨끗이 닦아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더랬다.
어렸을 때 숨바꼭질 할 때 좁은 장롱에 숨어서 이불이 미끄러질까 봐 조마조마했던 생각이 났다.
추운 겨울 형제들과 놀면서 장롱을 어찌나 드나들었던지 안 부서진 게 기적이었다. 그러나 어려움을 거치고 장만한 그 장롱에는 입지 않는 새 옷, 새 수건, 새 내복이 들어있고, 덩그마니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그 앞에 놓인 커다란 침대에는 제대로 누워서 잠을 주무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모든 가구가 하나의 장식품처럼 자리를 잡고, 집안 곳곳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엄마에게 부족하게 살던 일상을 벗어버린 홀가분함에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주었나 싶다.
식탁은 또 왜 그리 크게 보이던지. 사실 식탁을 사긴 했는데 그 식탁에서 밥을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엄마의 식탁은 그저 힘든 살림살이가 조금 더 나아진 것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보상 뭐 그런 전리품 같은 것이었나.
식탁 위에는 밥솥과 그 외에 잡다한 것이 항상 올려져 있었고, 조리할 때 보조 싱크대 같은 역할로 쓰였다.
가끔 식탁에 앉아있으면 생뚱맞게 엄마의 식탁이 생각나... 이상하지
나는 식탁을 어쩌다 보니 두 개를 두고 쓰고 있다. 밥도 먹고 간식도 올려놓고, 쌓여만 가는 약봉지도 올려놓고, 식탁 본연의 쓰임으로 잘 쓰고 있다. 책상이 없는 것도 아닌데 책상에 앉는 거보다 식탁이 훨씬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러한가
식탁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며 어떤 날은 뭉게뭉게 흰 구름이 눈에 들어 미소 짓게 하고, 또 어떤 날은 불그스레한 노을이 물드는 환상적인 층층 빛깔에 넋을 놓기도 한다. 추운 날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시원한 동치미에 찐 고구마를 먹노라면 '왜 엄마와는 한 번도 이런 시간이 없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서 고단했던 엄마의 삶에 마음이 휑해진다.
지금은 저 멀리 내가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편안히 쉬시나 안부가 궁금해진다. 식탁에 앉아 밖을 보며 밥 익는 냄새에 잠시 그 옛날의 그리움으로 감상에 젖어든다. 한숨은 시간에 묻히고 쓸쓸한 연가는 허공에 흩어진다.
엄마의 전리품은 그렇게 오랫동안 엄마를 보낸 후 들어가지 못했던 거실에 혹은 안방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서 빛나던 시절 건강하게 웃던 40대의 엄마를 기억하는 증거품으로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왜 항상 40대일까. 엄마는 나의 기억 속에서는 늙지도 않고, 꿈에서조차도 항상 그 모습으로 기억되는 건 아마도 나의 마음이 그 시절을 그리워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지금의 식탁이 낡아서 식탁을 다시 산다면 커다란 식탁을 사야겠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더 큰걸 사서 엄마가 앞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오손도손 모여서 다 같이 둘러앉아보고 싶다.
나이 드는 게 아까웠던 엄마...
시간도 바꾸지 못한 그 시절의 풍경은 내 마음의 스케치북에 상세히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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