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엄마에게서 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천륜의 유료기간은?

by 그리여

삶에도 유효기간이 있을까

그렇다면 나와 엄마의 연결고리가 된 천륜은 얼마의 유효기간이 있는 것인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순간순간 생각나는 일들이 어제 일만 같다. 시골 가면 왠지 문을 열고 나오실 거 같은 순간은 이미 희미해졌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함께하니 언제가 되어야 온전하게 보내드릴 수가 있는 것일까

마치 옆에 계신 듯 중얼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것을 같이 못 보고 돌아가신 게 아쉬워 한숨을 쉬기도 한다. 지금 여기 같이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미련이기에 아직도 남은 유효기간이 있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얼마나 더 쓸 수 있을까


몸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셨을 그 어느 날, 엄마는 내게 어려운 이야기를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힘겹게 꺼내셨다.


"니 아부지가 군대 가고 없을 때 니가 생긴 걸 알게 되었다 그 시절 군대는 꼬박 3년 동안이나 복무했어야 했다. 오빠도 어린데 너까지 태어나면 어떻게 사나 싶어 막막하여 너를 지우려고 몇 가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 그런데도 너는 떨어지지 않았고 태어났대이. 처음에는 울지도 않고 꼼짝도 안 하고 있어서 정말로 잘못되었는지 알았어. 그러다가 희미하게 숨 쉬는 너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미안타 잠시나마 너를 그렇게 했다는 것이..."


아버지에게 내가 몇 시에 태어났는지 궁금하여 물었더니 군복무 시절이라 내가 태어났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이니 엄마는 홀로 얼마나 무섭고 힘이 드셨을까 내가 아이를 낳아보니 더 알겠다.

나는 처음으로 듣는 내 출생에 관한 사연이었지만,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나의 출생 시 사건을 들으니 별로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엄마 괜찮아. 내가 생명력이 질겼네.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부부가 같이 키워도 힘든 게 아기인데, 엄마 혼자 키우려니 겁이 났겠지 괜찮아"


우리가 자랄 때는 생일을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난 내 생일이 언제인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서울로 직장을 다니려고 올라오면서 어느 날 엄마에게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이 니 생일이대이”

“내 생일이라고?”

“그래 음력 생일이니 이제 이 날짜로 알고 있으면 된대이”


주민등록상 생일은 제대로 된 기록이 아닌 시절이라 정확한 내 생일을 성인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누가 생일 축하한다고 하면 쑥스러워 주변에 잘 알려주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여전하다. 뭐 그리 설레거나 기다리지도 않는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생일이 더 대수롭지 않다.

나이를 먹는다는 걸 기억하는 날일뿐이니까


언젠가 딸이 내 사주를 묻는데 난 정확하게 몰라서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언제 태어났는지 말해줄 엄마가 안 계시니까. 물론 그동안 한 번도 궁금해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문득 생각이 나서 외삼촌에게 물어보았다. 옆에 있던 사촌들이 어떻게 자기가 태어난 날과 시를 모르냐고 의아해했다. 어렸을 때 생일도 몰랐고 한 번도 챙기지 않았던 걸 알고는 어떻게 그러냐고 놀라기도 했다. 우리 집과는 달리 외사촌들은 부유하게 자랐다. 그러니 나의 이런 사정을 알리가 없었겠지.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으니. 어렸을 때 그렇게 친하게 놀았어도 몰랐다면서 측은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 당시 외삼촌이 면서기로 있으면서 우리의 출생을 올려주셨으니 알 거 같았다. 외삼촌은 집에 기록해 둔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확인하고 알려주시겠다고 했다. 워낙에 꼼꼼하시고 똑똑하셨던 외삼촌은 엄마의 자랑인 동생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며칠 있다가 외삼촌의 문자를 받았다. "니가 태어난 시간이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마라. 좋은 사주다"라고 하셨다.

반백을 넘게 살고서 이제야 나의 정확한 사주를 알게 되었다.


엄마가 어렵게 꺼낸 이야기였지만 더 일찍 말했어도 난 별로 타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잘 흥분하지도 않고, 들뜨거나 흥이 많은 성격이 아닌지라 '응 그렇구나' 하고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얼마나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계셨을까

이제라도 홀가분하게 털어놓으셨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모든 걸 털어놓은 엄마는 빈 통처럼 가벼웠더랬다.

가죽만 남은 엄마의 모습을 우리는 끝까지 지켜보았고, 엄마는 그런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서 얼마나 미안해하셨을지. 그리고 당신의 성격상 얼마나 호통치고 싶으셨을지 짐작만 한다. 자식에게 절대로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평소 엄마의 지론이었다.


언젠가는 삶을 놓는 게 인간의 생이라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온전히 나만의 몫이다

엄마가 어디에 있든 우리에게는 영원히 엄마다. 내가 아닌 엄마로서 살게 된 그 순간부터 희생은 옵션처럼 따라붙는다. 아니 희생이 아니라 원해서 하는 사랑이다.


엄마와의 유효기간은 내가 놓지 않고 잡고 있으니 무한대다. 엄마가 남기신 정신적 유산은 내가 언젠가 엄마 곁으로 간다면 그때는 끊어질지도 모르려나.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엄마는 어느 순간 어떻게 표현했든 그것이 비록 만족스럽지 못하였더라도 결국은 딸에게 한 가지 확실하게 남기신 건, 힘겨운 일상을 헤쳐나갈 강인한 정신과 반듯하게 사셨던 당신과 비슷한 유전자였다.


엄마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딸인 나로부터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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