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란은 싱싱하고 조그맣고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닭도 키우지 않는데 계란을 풍족하게 먹는다는 건 쉽지 않았다
엄마는 토종란 두 개를 어디서 갖고 오는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아버지와 오빠 밥 뜰 때 바닥에 깔고 참기름을 떨어뜨려서 주셨다
그냥 슥슥 비비면 노른자가 터지면서 연노랑빛으로 밥알이 물들었다
난 엄마가 몰래 깔아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했다
어린 날의 나는 먹는 게 늘 시원찮고 흥미도 없었지 배가 고파도 말이야
비위가 약해서 토하기도 잘했었지
별로 서운하지도 않았어
그냥 날계란은 먹기 싫었지 그러나 계란프라이는 먹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좋아했어
그렇다고 먹고 싶다고 조른 적도 없었지
방학이 되면 서울로 유학 간 오빠가 집에 오니까 항상 계란 네 판을 사놓으셨다
물론 우린 엄마의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겠지 어렸으니까
우린 그걸 프라이해서 동생들이랑 단번에 다 먹어 치웠다
아이고 이걸 니들끼리 다 먹었나 니 오래비 줄려고 사놓은 건데
엄마는 우리의 먹성에 놀라 언성을 높이셨다고 동생은 그때의 기억을 되새긴다
동생은 그 시절 그때 계란 네 판의 의미는
엄마가 우리에게 보상의 의미로 계란을 많이 사놓은 줄 알았어
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웃었다
난 왜 그 시절 계란 네 판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건지 도통 모르겠다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엄마가 매번 오실 때마다 계란을 한판씩 사 갖고 오셨어
밥 밑에 계란을 깔아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셨던 것일까
여한 없이 먹었다 그런데도 질리지가 않았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이랑 엄마가 해준 김치겉절이에 먹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었지
엄마는 잘 먹이지 못하고 키운 게 늘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난 한 번도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셨는지 알았으니까
고생하시는 엄마가 안쓰러웠을 뿐이었지
결혼하고서도 시골 가면 엄마는 매번 계란을 판으로 사주셨다
싱싱하고 맛있는 계란은 늘 엄마가 챙겨주셨다
처음에는 한판이었다가 애들이 커가면서 두 판을 사 주셨다
막내딸은 이제야 시골 갈 때마다 계란을 들고 왔던 이유를 내게서 들었다
엄마! 난 시골 계란이 서울보다 싸고 싱싱해서 할머니가 사 주시는 줄 알았어.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줄은 몰랐어!! 라고 한다
할머니는 항상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엄마는 늘 고마웠어! 풍족하진 않았지만 바쁘신 중에도 항상 따뜻한 밥이 떨어진 적이 없었지
아! 그래서 엄마도 밥이 떨어진 적이 없었구나 밥솥에는 항상 밥이 있었어
맞아 할머니를 보고 배워서 그래
지금도 나는 계란프라이에 김치겉절이, 파김치를 올려먹는 걸 좋아한다
예전처럼 부족함 없이 먹을 수 있게 된 지금이지만 그래도 계란을 생각하면 왜 늘 마음 한구석이 허기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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