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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여 Dec 03. 2024

기억속의 먹거리는 그리움으로 5

막걸리 냄새에 홀려서

우리 집 뒤에는 담벼락을 두고 그 너머에 술도가가 있었다

항상 술찌게미를 마당에 펼쳐두고 말린다

그러면 묘하게도 냄새가 좋아서 나도 모르게 입을 다시곤 했다

술은 싫은데 냄새가 좋은 건 무슨 조화던가


아버지께선 논에서 일하시면 항상 허기가 진다고 하신다

그럴 때 막걸리 한잔이면 거뜬하다고 하셨다

엄마가 두부찌개를 자작하게 끓이시면 아버지는 막걸리를 한잔하시고는 밥을 드시지 않았다

배가 부르다고 하셨다


그날은 아버지가 늦게까지 논에서 일하시느라 집으로 오시지 않았다

이거 아부지 갖다 드리고 온나

엄마가 커다란 주전자를 들려주신다

혼자 주전자를 들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논까지 가려면 시간이 한 20분쯤 걸렸다

어린아이 걸음이니 아마도 더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들고 가자니 슬슬 무거워졌다

놨다 들었다를 몇 번 하니까 막걸리가 출렁이면서 냄새를 풍겼다

묘하게도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났다

내가 배가 고팠나

아무튼 냄새가 너무 좋아 한번 먹어보리라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한 손으로 주전자를 들고 주둥이에 입을 대고 마시려는 순간

손에서 힘이 빠지면서 주전자가 바닥으로 퉁!! 하고 나뒹굴어지고 술이 바닥으로 쫘악 쏟아졌다

옴마야 큰일 났다 

순간 안절부절못하고 사고 수습할 생각에 정신이 아득했다

주전자는 찌그러지고 술은 엎질러지고 아무튼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금살금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 막걸리 엎었어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괴안타 하셨다

휴!!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죄지은 죄수처럼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았다

내가 막걸리 엎고 온 그날 엄마는 아버지에게 막걸리를 가져다주셨는지 어쨌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날 달콤한 막걸리 냄새에 홀려서 술을 엎고 나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나의 모습만 생각날 뿐이었다


막걸리 냄새에 취했었나




난 술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되도록 마시지 않는다

내편은 느린 마을 막걸리에 꽂혀서 한동안 즐겨 마셨다

막걸리 사랑이 넘쳐나서 포천에 있는 느린 마을 배상면주가에 막걸리 시음하러도 갔다 왔다

여러 종류의 막걸리가 많았다

맛도 좋고 종류도 많았고 직접 사 올 수도 있었다

미각이 살아있는 막내를 대동하고 막걸리 시음하러 가는 내편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내가 엎었던 막걸리의 냄새가 나는 걸 찾을 수는 없었다



#막걸리냄새에홀려서

#추억

#먹거리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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