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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여 Dec 10. 2024

기억속의 먹거리는 그리움으로 6

찬밥에 고추장 슥슥 비벼서

기나긴 겨울밤 그때는 왜 그렇게 배가 고팠던 것일까

저녁을 먹어서도 배가 쉽게 꺼졌다

밖에 찬바람이 씽씽 불면서 문은 덜커덩거리고 방은 아랫목을 조금만 벗어나도 얼 것처럼 추웠다

방 한구석에 놓아둔 걸레는 이미 얼어붙었다


배가 고프니 잠도 잘 안 왔던 걸까

우리 찬밥에 고추장 비벼먹을까

오빠가 누웠다가 벌떡 일어난다

그러곤 엄마가 깨실까 봐 살금살금 부엌으로 간다

여기저기 뒤적여서 찬장 안에 떠놓은 고추장을 찾아내고 참기름도 빼먹지 않고 꺼내놓는다

부뚜막 위에 떠놓은 밥이 덮여 있었다

밥알이 차가워서 유난히 탱글탱글해 보인다


아직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는 부뚜막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았다

양푼이에 밥을 탁 쏟고 고추장을 한 스푼 푹 떠서 넣고 슥슥 힘차게 비빈다

오빠의 손놀림에 따라 눈알이 이리저리 따라가면서 눈으로 같이 비볐어

우리는 숟가락을 입에 물고 군침을 꿀꺽 삼키지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떨어뜨리면 윤기가 좔좔 흐르더라

다됐다 먹어

오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숟가락 세 개가 쑥 들어온다

와 맛있어

오빠는 숟가락으로 밥을 나눈다 이건 니들이 한 칸씩 먹어 어느 정도 먹고 나서 배가 부를 때쯤 오빠는 그렇게 비빈 밥을 분배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더 맛이 있다 서로 자기 거보다 남의 밥에 더 숟가락을 갖다 댄다

치열하게 숟가락이 부딪히며 밥 쟁탈전을 벌인다

그냥 먹는 거보다 더 맛있다 역시 맛있는 건 경쟁하면서 먹어야 제맛이지

고소한 참기름향이 돌면서 맛깔스러운 고추장으로 비빈 차갑고 빨간 밥알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이내 양푼이 박박 긁는 소리가 난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서 지글지글 끓는 아랫목으로 쑥 들어가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우리는 조잘대다가 잠이 스르르 들었다 추운 겨울이 더 이상 춥지 않게 느껴졌다

까무룩 하게 속으로 빠져 들 무렵 고추장에 비벼 먹던 찬밥이 생각난다 정말 맛있었다


부뚜막에 옹기종기 웅크리고 앉아서 밥을 먹으며 문득 생각했다

왜 부뚜막에는 항상 밥이 남아 있었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집고추장을 먹기가 힘들어졌다

아파트에서 고추장을 하면 그 맛이 안 났다

한번 해봤다가 실망스러워 그 이후론 하지 않는다

바쁘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하단 생각에 사서 먹는다


커다란 다라이에 빨간 고추장을 만들던 엄마가 떠오른다

이거 좀 저어라 

난 한쪽으로 엄마가 하던 대로 커다란 주걱으로 원을 그리며 따라 한다 

커다란 주걱이 지나간 자리에 빨갛게 길이 생긴다 그 어떤 길보다 맛난 길이다


숨 쉬는 투박한 항아리에 담아서 뚜껑을 닫았다 열었다 고추장을 자연숙성시키셨지

장독대의 장은 언제나 맛있었다

국자로 푹 떠서 장도 담아 오고 된장도 꺼내오고

고추장도 듬뿍 담아 오고 장독대는 항상 비어있던 적이 없었다

고추장 한 대접 꺼내와라

엄마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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