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가마솥밥
내가 처음 가마솥에 밥을 지은건 7살 때였다
이상하리만치 어린 나는 불을 잘 피웠어
그냥 어깨너머로 보면 뭐든 쉽지 않게 따라 하는 따라쟁이였지
그 시절엔 쌀등겨로도 불을 땠다
풍로를 아궁이 앞에 두고 긴 관을 안쪽으로 집어넣고 첫불을 조심스레 피워서 등겨를 살살 끼얹으며 풍로는 바람세기를 조절하며 돌린다 세게 확 돌리면 구멍이 뻥 뚫려서 불을 지필 수가 없다
풍로 조절하는 게 핵심이지 다행히도 난 양손을 잘 쓴 덕분에 수월하게 할 수 있었어
한 손으론 풍로를 돌리고 한 손으론 등겨를 넣었지
물론 처음부터 양손을 썼던 건 아니야
나는 모태 왼손잡이인데 옛날에는 어른들이 왼손 쓰는 걸 싫어하셨어
그냥 남과 다른 게 싫으셨나
밥 먹을 때마다 손등을 톡 치셨어 오른손 써라 하신다
쉽지 않았지 모태 왼손잡이니까
하지만 혼나기 싫었고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이 싫었어 그래서 부단히 노력했고 결국은 양손을 쓰게 됐어
덕분에 불을 더 잘 지피게 되었지
빨갛게 타는 불꽃은 노랑과 붉은빛이 너울너울 되면서 따스하고 아름답다
불꽃을 넋 놓고 보고 있다 보면 가마솥에서 지글지글 하얀 밥물이 흐르면서 밥 익는 냄새가 난다
그때부터는 불을 약하게 지펴야 한다
밥물이 잦아들고 밥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나기 시작하면 불을 뺀다
가마솥 주변에 따뜻한 불재를 조심씩 둘러두면 솥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또드득 따닥따닥 틱틱틱 신호를 보낸다
뜸을 잘 들여야 밥이 맛있다 5-10분 정도를 기다리고 뚜껑을 연다
하얀 김이 치익 오르며 눈같이 희고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흰쌀밥이 보인다
가마솥밥을 뜨는 전용 쇠로 된 주걱은 가마솥에 갈려서 닳고 닳아 3분의 1이 없어져도 손에 익어서 버리지 않는 소중한 도구다
닳아서 반만 남은 쇠주걱으로 밥을 뜨고 누룽지를 긁는다
노르스름하고 바삭한 누룽지는 그냥 먹기에 좋은 간식이었지
긁지 않고 숭늉을 끓인다 물을 부으면 치지직하고 소리 지른다
잔불을 지피고 물이 끓으면 적당히 퍼진 구수한 숭늉이 된다
오늘은 밥이 좀 되다 물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러면 엄마가 잘했다고 한다 엄마는 된밥을 좋아하셨다
어느 날은 밥이 좀 질게 된다
그러면 아버지가 잘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진밥을 좋아하신다
덕분에 나는 항상 밥을 잘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도 밥물 맞추는 건 눈으로도 그냥 맞춘다
자주 하니까 못할 수가 없다
압력솥에서 김이 치익하고 올라가며 밥 익는 냄새가 집안에 퍼진다
밥 익는 냄새가 주는 그리움이 있다
평화롭고 따뜻하고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
따뜻하고 소박하게 한 끼 먹던 그 옛날의 젊은 엄마 아빠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내가 가마솥에 밥 지은 얘기를 하면 친구들이 그런다
누가 들으면 70살 먹은 어르신인 줄 알겠네
야 니 우리랑 같은 나이 맞냐!! 같이 학교 다닌 거 보면 맞는데 말이야 큭큭
난 그저 웃지
니들이 뭘 알아 어린것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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