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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여 Nov 15. 2024

단풍구경 갔다가 구경도 못하고

큰일 날 뻔했네 휴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아버지 단풍구경시켜 드리러 시골로 새벽 일찍 서둘러 출발했다

아부지 우리 지금 내려가요

안 바쁘나

단풍구경 가게요 그동안 운동 열심히 하셨는지 오늘 산책하면서 볼까요 

열심히 했다!! 


아버지랑 간단하게 통화하고 내려가는데 차는 왜 이리 막히는지

사람들은 참 부지런도 하다 나도 새벽 일찍 나온다고 나왔는데 나 같은 사람들이 참 많기도 하다

단풍이 고우니 너도나도 나선 것이리라


드디어 도착!!

아버지는 반가운 얼굴로 우리를 맞으신다

아부지 잘 지내셨어요?

그래 오느라 고생했지 차 많이 막히드나

일찍 나와서 그나마 괜찮았어요 서울은 빠져나오기도 힘들고 들어가기도 힘든 곳이에요

허허 그키말이다 오느라 애먹었다


동생과 나는 가지고 온 반찬들을 냉장고에 정리한다

아부지 이거는 먼저 드셔 꼭 챙겨드셔야 돼요 이건 금방 겉절이인데 김치냉장고에 넣어둘게요

걱정 마라 잘 챙겨 먹는다

혹시라도 끼니 거르실까 노파심에 신신당부한다

그 사이 내편은 마당에서 아버지의 정원을 구경하고 있다


냉장고 정리를 하고 나서 싱크대를 보니 냄비가 하나 놓여 있다

설거지 하려고 뚜껑을 열어보니 국이 가득 들어있다

아부지 이거 뭐야

응 내가 먹고 거기다 뒀어

이걸 왜 여기다 뒀어요 다시 데워놔야겠네 하마터면 물을 그냥 부을뻔했네

냄비를 가스에 올리고 불을 붙이고 청소하러 화장실을 갔다



마당에서 내편이 차를 빼고 기다린다

아부지 맛난 거 먹고 단풍구경 하고 산책도 하면 좋을 거 같아요


40여분을 달려 팔공산으로 단풍구경을 갔다

주변이 예쁘게 물들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맛있는 밥을 먹고 오래된 절을 둘러보고 둘레길이 잘되어 있어서 걸어보기로 했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이 났다

아부지 혹시 아까 가스불 끄셨어?

뭔 불

아까 국 데운다고 올렸는데 나는 안 껐어요

나도 안 껐는데

동생을 부른다

너 혹시 아까 가스불 껐니?

껐다고 해줘  껐다고 해줘 제발!! 속으로 빌면서 간절함을 담은 눈으로 쳐다봤다

아니 나도 안 껐는데 언니가 끈 거 아니었어?


이런 아무도 안 껐다

둘레길을 걸으려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단풍이 너무 고와서 더 속상했다 아버지 모시고 저 길을 걸어야지 했는데 가스불이 어찌 되었는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더는 구경을 할 수가 없어 집으로 향했다


꺼졌을 거야 냄비에서 국물이 넘치면 불이 꺼지니까

창문도 열려있어서 괜찮을 거야 긍정을 끌어모아 초조함을 누른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화근내가 가득하다

급히 부엌으로 달려가니 냄비는 탔지만 불은 꺼져 있었다 다행이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시래기가 부드러워서 국 맛있었는데

아버지가 아까워하셨다

아부지 걱정 마 오늘 다시 끓여 온 거 있어 내가 손질해서 한 거라 이것도 부드럽고 맛있어요


아부지 냄비는 버리고 다시 하나 사 올게

안 사도 된다 얼마 전에 사놓은 냄비가 하나 있

아버지가 여기저기 뒤적이시더니 작은 냄비 하나를 꺼내신다

이 기회에 냄비 새거 쓰면 된다 어차피 탄 냄비는 낡아서 바꿀까 했는데


이럴 줄 알고 냄비 하나를 더 사놓으셨나 보다


사고 안 나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나의 실수로 단풍구경 하려던 계획이 무산되어 속상했다

어쩜 그렇게 까맣게 잊을 수가 있을까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혼자 자책했다


맑은 하늘과 고왔던 단풍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단풍구경

#실수 #타버린냄비

#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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