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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Nov 03. 2019

#33. 몬트리올로 가는 길

트러블 콜렉터의 입국의 추억

김해-인천-토론토-몬트리올. 꼬박 열다섯 시간의 비행이었다. 태어나서 가장 먼 곳으로 향하는 여정. 체류를 준비하며 (이번만큼은) 순탄한 시작을 기도했다. 김해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23kg 캐리어의 발 부분이 부서지면서 바퀴가 떨어져 나갔다. 역시는 역시다. 문제가 생기지 않을 리가... 궁여지책으로 체크인 카운터에서 테이프를 얻어 부서진 바퀴 부분을 칭칭 감았다.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다. 


토론토로 향하는 비행 편이었다. 거의 모든 좌석이 다 찼는데, 출발 직전까지 내 옆 옆자리가 모두 비어있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웬 떡이야, 편하게 가겠다 했겠지만, 트러블 콜렉터이자 프로 삽질러인 내게 그런 행운이 올 리가 없다. 혹시 하자가 있는 자리인가 싶어서 앞뒤로 좌석을 더듬어 보았는데 멀쩡했다. 찝찝함을 안은 채 비행기가 이륙했다. 창공에 도달하자 창가인 내 자리로 태양볕이 작열했다. 기내 창문 커튼을 내리려고 손을 올렸는데 잡히는 게 없었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고개를 드니... 커튼이 없다!? 내가 앉은 줄의 좌석만 비어있는 이유였다. 내 자리가 아마도 (모두가 기피하는) 마지막 창가 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출국 일주일 전 티켓팅한 주제에 '무조건 창가'를 외쳤던 과거의 나새끼... 죽어 그냥.


 토론토에서 내려 몬트리올로 가는 국내선을 타야 했다. 주어진 환승시간은 두 시간 반. 빠듯했다. 이민국에서 캐나다 비자를 받아야 했고, 대한항공에서 짐을 찾은 후, 터미널을 옮겨 (국내선인) 에어캐나다로 짐을 부쳐야 했다. 비자를 받고 집채만 한 가방을 메고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열나게 달렸다. 공항 철도를 타고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예약했던 비행 편이... 없다!? 기상악화로 비행 편 자체가 없어졌다고. 에어캐나다 카운터에 찾아가니 전화번호 하나를 주며 '알아서' 재예약을 하란다. 전화를 걸었더니 대기하라는 안내멘트만 삼십 분 동안 흘러나왔다. 애초에 티켓을 샀던 대한항공에 전화를 걸었다. 안내원은 대한항공 카운터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시 짐을 이고 끌고 국제선으로 향했다. 


그런데 터미널을 아무리 돌아도 대한항공이... 없다!? 다시 대한항공에 전화를 걸었더니 에어캐나다에서 이미 체크인이 되었으니 그쪽에서 해결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 선생님 처음부터 그렇게 얘길 해주셔야죠... 시발 시발 염불을 외며 짐을 끌고 다시 국내선행 열차를 탔다. 이동하며 에어캐나다에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을 어깨에 걸치고 거의 한 시간을 대기한 끝에 연결이 되었다. 긴 삽질을 마치고 체크인을 하려는데 줄은 어찌나 길고 또 직원들은 어찌나 느긋한지. 짐을 다 부치고 나니 보딩 10분 전이었다. 마음은 급해 죽겠는데  X-ray 통과 전, 무작위 가방 검사에 걸리고 (맨날 나만 걸리지 나만)... 겨우 바꾼 비행 편 또 놓칠 새라 죽어라 뛰었다는, 불운의 아이콘, 본투비 삽질러의 끝까지 슬픈 비행 썰.


몬트리올 땅을 밟았을 때 나의 상태는 흡사 동양에서 날아온 좀비...? (때마침 할로윈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아침까지 논스톱으로 잤다. 낮과 밤이 정확히 거꾸로인 열세 시간의 시차였다. 존잘 앞에 취향 없듯, 피로 앞에 시차는 무의미함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시작하는... 


몬트리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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