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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Oct 29. 2022

아이들의 이중언어 능력

기죽을 필요가 전혀 없단 말이야, 너희는 사실 더 멋지고 대단한 사람인걸

  한국의 학교에서 다문화 학생들은 얼핏 보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수업이나 평가에 좀처럼 못 따라오고 멍하니 있거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의 학교라는 틀에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았을 때 이야기이다. 우리 아이들은 알면 알수록 자랑스럽고, 멋지며, 대단한 존재이다.


  나는 네이티브 스피커와 농담을 주고받거나, 그의 말을 통역할 수 있을 정도로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가 없다. 나름대로 외국어 익히는 것을 좋아해서 영어를 포함한 일본어, 중국어 등을 공부해보고자 시간과 돈을 들인 적이 있음에도 말이다. 그 결과 지금 내가 가진 건 공인 외국어 시험 급수일 뿐, 구사 능력은 꽝이다.


  한국어가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 학부모님께 급히 전달해야 하는 사항이 생기거나, 전학 또는 취학 문의로 한국에 갓 입국하신 외국인 학부모님께서 갑작스레 학교로 찾아오실 때, 급하게 늘어놓은 나의 짧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순간 느껴지는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러시아어 이중언어 강사님이 안 오신 날이면 진땀을 빼며 번역 어플을 사용하거나 바디랭귀지로 소통을 시도하는데, 러시아어는 한국어로 번역할 때 정확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영어를 한 번 거쳐서 번역을 해야 한다. 한 마디를 전하더라도 품이 많이 들고, 정확하게 번역이 안 되는 단어가 있을 경우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또한, 외국에서 오신 학부모님의 입장에서는 한국 학교의 시스템이 생소하다 보니 전달 과정에서 부연 설명도 해 드려야 한다. 30분이면 끝날 일을 1시간이 넘도록 하고 나면 온 몸에 진이 빠진다. 


  그런데 요 근래에는 우리 반 아이들 덕분에 이 과정이 조금 수월해졌다. 3학년 즈음되니 한국어가 능통한 아이들이 생겨 나를 도와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부모님의 문의 내용을 듣고 나에게 어떤 내용인지 전달해주거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무리 없이 학부모님께 전달해주곤 하는데,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다. 학부모님뿐만 아니라, 한국어가 서툰 친구들에게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애써 전달하고 있거나, 수업 시간에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일 때면 한국어와 모어가 모두 능통한 학생이 정확하고 중간에서 손쉽게 전달해주곤 한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지낸 다문화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2개 국어를 할 줄 알게 되므로 이미 자신만의 강점을 갖춘 셈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모어와 한국어 외에 다른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학생들도 있다. 이주 과정에서 여러 나라를 거치다 보니 그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게 된 경우도 있고, 자신의 강점을 인식하고 그 강점을 키워나가고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학생도 있다. 다양한 경우를 보며 알게 된 점 하나는 우리 아이들은 언어 습득 능력이 확실히 빠르다는 점이다. 외국어를 계속 들으며 배우고 익혀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보니 언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능력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국적의 아이들이 어울려 놀다가 각자의 언어를 말하게 되고 그에 대해 궁금해하고 몇 마디 주워 들어 말하며 노는 것을 보면 확실히 언어 분야에 발달해 있음이 느껴진다. 누구나 외국어를 쉽게 익히지는 않는다. 언어 습득 능력 또한 하나의 강점인지라 다문화 학생들은 이중언어 능력과 언어 습득 능력이라는 두 가지 강점을 갖춘 멋진 존재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강점이 강점인 줄 모른다. 학교에서는 온통 알아듣기 힘든 수업들, 손에 쥐어지는 것은 100점 만점에 10~20점대인 성적과 그에 따른 등수이니 자신이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있다.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교과 성적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어, 수학 문제 몇 개 더 맞히는 것보다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멋지다. 나 또한 그러했듯이 많은 성인이 하나의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돈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결과가 고작 외국어 성적임을 생각해본다면 우리 아이들은 이미 얼마나 멋진 능력을 갖춘 것인가!


  자신의 강점을 알고 계속해서 계발해 나가는 것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지닌 강점을 인식하고 나서부터는 이러한 강점을 잃지 않고 키워나갈 수 있도록 적극 독려하고 있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살 것이니 그저 한국어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친구들끼리 모어로 대화하는 것이 한국어 능력 향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적잖게 거슬리곤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살아갈 거라면 한국어를 응당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말에 반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한국어는 제2 외국어로서 구사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고, 자신의 모어 또한 계속해서 지키며 키워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어를 하기 위해 모어를 저버릴 필요는 없는 것. 


  감사하게도 내가 근무하는 지역의 교육청에서는 다문화 학생의 이중언어 능력 계발을 장려하기 위해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를 매년 개최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 모어와 한국어로 발표를 하고, 발표 내용에 대해 모어와 한국어로 질의응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아이들을 꼬셔서 출전하게 되었고 멋진 우리 아이들은 수상하는 영광까지 얻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식과 함께 올라가는 자존감은 덤이다. 대회장에 인솔하여 다른 학교의 다문화 학생들이 하는 발표를 들으면, 다소 생소한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학생도 있어 새삼스레 감탄하게 된다. '한국에 저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편으론 종종 안타까운 장면도 보게 된다. 한국어로는 무리 없이 발표를 했으나 모어를 잊어버려 발표하지 못하는 학생들. 한국어가 약간 부족하면 한국에 살면서 좀 더 배우면 그만이지만, 모어를 잊어버리면 그 학생만의 소중한 강점을 잃게 되는 셈인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씁쓸해진다.


  부디 한국에 있는 많은 다문화 학생이 자신의 강점을 알고 소중히 잘 키워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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