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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Oct 01. 2022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비로소 느껴진 두려움과 원망 그리고 분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길어지면서 관련된 뉴스와 콘텐츠가 끊이지 않는다. 전쟁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러시아가 동원령을 선포하면서 연일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에 유독 눈이 갔다. 역사책에서만 보고 들었던 상황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믿기가 어렵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 몇몇 있었지만, 고백하자면 여지껏 다른 나라의 전쟁이 크게 와닿은 적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가끔 알게 된 먼 소식에, 전쟁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무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헤아려 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다였다.


  아마 이번 전쟁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였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전쟁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면서 세계 경제와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데다가, 대국이 엮여 있는 전쟁이니 아주 무관심하기는 어려웠을 테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로 인해 평소와는 달리 조금 일찍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이 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불현듯 우리 아이들 중 몇몇이 우크라이나에서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K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크라이나에 계신다고 했었는데.' 'A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하지만 전쟁이라는 건 여전히 내게 너무 연하고, 아득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가볍게 말할 수 없는 규모의 일이라는 생각 아이들에게 가족과 친구는 어떤지, 걱정이 담긴 위로를 선뜻 건네기가 어려운 기분이었다. 괜히 안부와 위로를 건넸다가 아이에게 더 상처를 주지 않을까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쟁 이야기를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 했고, 업시간에 가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저릿하고 불편했다.

  한편으로는 전쟁이 세계적인 빅이슈인 상황에서 계속 모르는 듯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살펴 마땅한 안부라면 살펴야 하는 아닐까.' 선뜻 위로를 건네기도 어려웠지만, 소극적인 무심함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어느 날, 중국에서 온 S가 수업 시간에 전쟁 이야기를 꺼냈고, 나름대로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우크라이나에서 온 A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아직 우크라이나에 있으며, 엄마는 가족들이 걱정되어 매일 우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은 내게도 더 이상 먼 일이 아니었다.


  쟁이 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루는 러시아 국적을 가진 L과 우크라이나에서 온 K가 전쟁에 대한 관점이 달라 언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L은 러시아를 두둔했고, K는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옆에서 듣던 A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고개를 젓고 한숨을 쉬며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교실을 나가버렸다. 그들이 하는 러시아어를 거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주고받는 내용이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갔다. L과 K를 봐온 3년 동안 둘이서 다투는 모습을 처음 본지라 놀랍고 생소했다. 한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잠시 떼어놓으려고 애썼음에도 항상 붙어 다니던 둘이었다. 그럼에도, 친한 사이임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 아니겠는가. 세계의 정세가 작은 교실 안에서도 느껴지니 기분이 묘했다.


 시간이 지나 8월 무렵, 우리 학교에 R 학했다. R은 쟁을 피해 5월 즈음 우크라이나에서 중도 입국한 고려인이었다. 우리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A의 친척이기도 했는데, 오는 과정에 대해 어보니 같은 민족인 데다가 척인 A의 가족이 한국에 먼저 와 있었던 덕에 들오기가 조금 수월했다고 했다. 3개의 나라를 거쳐서 들어왔다고 했다. 그 과정이 어떠했을지 나는 지금도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전쟁으로 인해 계획 없이 한국으로 들어온 R의 가족은 급한 대로 A의 가족의 도움을 받아 같은 집에서 살며 한국에서 살아갈 기반을 마련한다고 했고, 향후 한국에 얼마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전쟁 때문에 한국으로 온 학생이라니, 전쟁이 피부로 좀 더 와닿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는 지금. 러시아 국적을 지닌 L과 수업 시간에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머니의 한국인 남자 친구가 어머니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L은 어머니의 남자 친구를 아빠라고 부르며 잘 따르는 편이었는데, 어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종종 어머니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L이 안쓰러워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L에게 든든한 존재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니, L은 어머니가 결혼을 하면 자신도 한국 국적을 딸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고 L도 한국 정서에 많이 물든 것 같다고 스스로도 이야기하였으니, 충분히 한국 국적을 취득하여 한국에 살고 싶겠다고 으레 생각하고 듣고 있었는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가벼이 들을 수 없었다. "저 아마도 18살에 무슨 나라 사람 선택해야 해요. 한국 사람, 국적 바꾸지 않으면, 지금 나 러시아 사람, 러시아로 다시 가야 해요. 지금 러시아 경기하고 있어요, 아, 전쟁, 전쟁하고 있어요. 러시아 지금 사람들 잡아가고 있어요. 군인 되기 위해서 잡아가고 있어요." 

  전쟁이 점점 더 커지고 있으니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러시아에 돌아가게 되면 러시아가 자신을 잡아갈 것이라고 했다. 요 근래 유도를 시작했다며 점점 커지는 팔 근육과 복근을 능청맞게 자랑하며 평소 마초 기질이 다분했던 L은 말갛게 웃으며 "저 죽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다. 두려움이 묻어있는 웃음을 본 건 처음이었다. L이 전쟁에 대해 느끼고 있는 두려움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당장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피하고 싶은 것.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에 있는 자신의 18살 친구는 이미 입영 통지서를 받았고, 그 친구의 가족들은 너무나도 괴롭고 슬프지만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딱히 피할 방법이 없으니 기도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가까운 이가 참전을 위해 징집된다는 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당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쟁 초기에 러시아를 두둔하던 L은 이제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의 수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 전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닌, 러시아의 수장 푸틴과 우크라이나의 수장 젤렌스키의 전쟁인 것 같다고. 그러니 이 전쟁은 둘 중 하나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도. 내 앞에 있는 이 아이가 러시아에 있었다면 지금쯤 동원령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삭막한 얼굴로 총을 들고 무장하며 다니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닿으니 낯설고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L의 어머니께서 남자 친구분과 꼭 결혼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생각했다.


  내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안정, 그리고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진심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이제는 무섭다. 욕심으로 인해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자들이 지극히 원망스럽다. 전쟁은 어서 끝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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