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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Oct 12. 2022

한국의 동화주의

한국에서 말 잘 듣는 학생이 된다는 것

  올해 3학년이 된 L이 있다. 내가 우리 학교에서 한국어학급을 맡은 지 3년째이므로, L은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봐왔던 아이이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현재 러시아 국적을 지닌 L은 한국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전 세계의 그저 부분임을 깨닫게 해 준 아이이다.


  L은 1학년 시절부터 한국의 학교는 규칙이 너무 많다며 진절머리 쳤다. 종이 치면 교실에 칼 같이 들어가야 하는 것(물론 괴로워하면서 제때 성실히 잘 들어가지는 않. 쳇)부터 안 되는 것들은 왜 이리 많은지, 하루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교사로부터 "위험하니 하지 말"소리를 들으니 자유분방한 L이 오죽했을까. L은 한국 학교는 너무 재미없고 답답하다고 했다. 내가 한국 학교의 규칙에 맞게 지도할 때 "왜요?"라는 질문이 꼭 따라왔다. 예를 들어, 한국 학교에서는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므로 1학년이 3학년 교실이 있는 층에 올라가면 안 된다, 선배한테 반말을 하면 안 되며 존댓말을 하는 게 좋다고 지도할 때에는 "러시아는 1~3살 괜찮아요, 다 친구예요. 한국에서 이거 왜 안 돼요?"라고 했다.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하면서 학교에서 누군가 너를 때린다고 해서 똑같이 때리면 너도 가해 학생이 되기 때문에 때리면 안 된다고 하니, 어이없다는 듯 낄낄거리는 웃음을 곁들이며 왜 그래야 하냐고, 바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만일 누군가가 자신을 때리면 자신도 똑같이 때려줄 거라고 했다. 


  또한, 러시아 문화권에서는 전체보다는 개인이 우선인 듯했다. 다수, 전체를 앞세워 개인이 희생하거나 양보하는 것이 한국만큼 당연하지 않았고, 나로 인해 다수가 피해를 받거나 해도 개의치 않고 자기 자신이 장 중요하다는 듯 행동하는 태도가 한국에 비해 좀 더 강했다. 신이 잘못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며 같이 혼나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는 L이 수업 시간에 너무 많이 늦어서 방과 후에 남 벌을 주 했는데, 오늘 자신의 스케줄이 있으니 나중에 남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남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정말로 일찍 잡혀있던 자신의 스케줄을 이행해야 하니 어쩔 수가 없고, 자신은 남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리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딱히 설득할 방법도 논리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한국에서는 그래야 해."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너희가 한국에 왔으니 한국의 규칙을 응당 지켜야만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강했다. "한국에서는 그래야 해."라는 말이 하릴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


  좁은 경험만으로 한국 사회 전체가 그렇다고 논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는 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경험하지 못하신 분들은 더더욱 그렇다. 많은 분들이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부터 빨리 배우고 한국 사람들이랑 잘 어울려야 하는 거 아니가?"라는 말씀들을 하신다. 그 속에는 아이들이 한국에서 잘 적응하여 살아 나가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연히 한국 사회에 맞는 옷을 입고 자연스레 스며들어야 한다는 시각이 깔려있다. 아이들이 입고 있던 옷이 색깔인지, 어떤 모양인지에 대한 고려는 빠져있다.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부딪히는 순간에 비로소 아이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보게 된다.


  어떤 날은 타 교과 선생님께서 L과 다른 아이들이 말썽을 부려 복도에서 큰 소리로 지도하고 계셨다. 끼어드는 것은 여러모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지나치려 했는데, 언뜻 들으니 L이 교과 선생님께 대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상황을 지켜보며 들어 보았다. L은 선생님께서 지도하실 때에 쓰신 "이 시끼야!"라는 말에 화가 난 듯했다. 선생님이 우리한테 욕을 하고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데, 왜 자신은 똑같이 하면 안 되냐며 덤비고 있었다. 선생님과 자신은 똑같은 사람 아니냐며 말이다. 교과 선생님께서는 기가 차신 듯 나에게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해 달라며 넘기셨고, 나는 아이들을 따로 교실로 데려가 지도했다. 이때 느낀 '신선한 막막함'이란! 교실에서 L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단순히 선생님에게 반항하기 위한 거라기보다는 정말 사고방식이 다른 모양이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 다니던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권위도 한국 학교와는 달랐다고 하니 어찌하겠는가. 결국, 한국 학교에서의 분위기를 차근히 설명해 주고, 아까와 같은 상황에 L이 어찌하는 편이 나았을지, 그리고 선생님께서 애초에 지도하신 이유와 왜 그런 말씀을 하셨겠는지를 충분히 설명하며 L을 이해시켰다. 이해라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날 이후, L이 아닌 다른 아이들, 나아가 러시아 문화권이 아닌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에 좀 더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지니고 있던 사고방식과 부딪히는 시간이 쌓이고 쌓이자, 비로소 아이들이 자신의 색깔이 담긴 옷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름의, 심지어 고유하다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지닌 아이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한국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들이미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일었다. 일종의 강요라는 생각마저 드니, "한국에서는 그래야 해."라는 나의 말은 점점 힘을 잃기 시작했다. 대신, 아이의 문화를 먼저 충분히 인정해 준 뒤 한국의 문화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면서, 한국의 문화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을 때에 경험할 수 있는 오해와 문제들을 이야기해주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왔고, 세세하게는 다르더라도 큰 줄기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만 마주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주변인들의 생각과 행동이 어떤 범주에서 아주 크게 벗어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다 나와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믿음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었고, 아이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것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L은 지금 어떤 학생이 되었을까. 한국의 학교에서 3년을 보낸 L은 이제 크게 말썽을 부리는 일이 없고, 교사의 지도에 "왜요?"는커녕, 운을 떼기만 해도 하려는 말이 어떤 말인지 눈치껏 알아듣는 학생이 되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함을 알고, 큰 저항 없이 꾸역꾸역 노력해보려는, 어찌어찌 한국의 학교에서 졸업이나마 해보려 애쓰는 학생.

  언젠가 L이 말했다. 늘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다던 녀석이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하여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저 계속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이제 나 한국 사람처럼 생각하고 한국 사람처럼 행동해요. 러시아에 돌아가면 힘들 것 같아요."라고. 선생님들께서는 어디로 튈 줄 모르고 튀던 L이 점차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표현하셨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노란 머리의 L이 한국의 교복을 꾸역꾸역 입고 있는 모습이 언제부턴가 어딘가 편치만은 않다.


  앞서, 좁은 경험으로는 한국 사회 전체를 논하기 어렵다고 하였지만, 우리 반에 있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한국의 공교육이 원하는 학생상에 맞추어져 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학교 밖이 크게 다르지만은 않을 것 같단 생각에, 오늘도 고민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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