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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 Sep 08. 2022

오늘도 무심코 마주한 편견

학교는 편견으로부터 좀 더 일찍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우리 학교에는 여름이 되도록 동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 두 명이 있다. 그 학생에 대해 선생님들께서 이야기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후 나도 둘 중 한 아이를 몇 번 보게 되었다. 무더운 날 동복을 입고 다녀서 눈에 띈 것도 있지만, 알고 보니 그 학생이 국내 출생 다문화 학생이어서 관심을 두어 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자란 다문화 가정 학생이므로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은 아니지만, 내가 파악은 하고 있어야 했기에.


  아이를 보며 덥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말 못 할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가정에서 자녀를 잘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라거나 하복을 살 수 없는 형편이라거나. 혹여나 하복을 살 수 없는 형편인 거라면 복지실에서 무료로 교복 나눔을 받을 수 있으니, 알려주려고 슬쩍 말을 건네보았다. "C야, 안 더워?" C는 괜찮다고 말했다.


  하루는 반팔마저 다 벗어던지고 싶은 날이었다. C는 여전히 동복을 입고 등교했다. "C야, 오늘 진짜 덥다. 쌤은 너무 더운데, 넌 안 더워?" 여전히 C는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다는 말속에 어려움을 숨기고 있을 수 있으니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되었다. "혹시 집에 하복 없어? 우리 C가 많이 커서, 작아져서 못 입는 건가?" 집에 하복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이어서 "제가 아토피가 너무 심해서요, 반팔 입으면 좀 그래서 하복 안 입고 다녀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너무 더울 텐데 재킷까지 입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더 이상 묻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아이가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한 것이고, 그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는 듯한 분위기를 전하고 싶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여름에 긴 옷을 입는 게 잘못은 아닐뿐더러 대단하게 이상한 일도 아니니까. 이유가 충분하다면 개인의 자유로 이해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이지는 않다 보니, 그 아이는 선생님들의 입에 종종 오르내리곤 다. "걔는 여름인데도 자켓까지 다 입고 다니더라.", "윽수로 더울 텐데, 차라리 춘추복만 입으면 몰라, 자켓까지 딱 입고.." 말속에 담긴 뉘앙스는 이상하다는 시각이 깔려있다. 그럴 때마다 C의 이유를 알게 된 나는 나름대로 아이의 사연에 대해 설명하곤 했다. 씁쓸하게도 "정신이 좀 이상한 거 아닌지.."라는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하지만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걔 다문화 학생이에요."이라는 말이 들려올 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생님들의 반응은, 대개 모든 게 이해된다는 반응일 때가 많다. 다문화 학생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학교에 있는 다문화 학생들 중, 가정에서 케어가 잘 되지 않는 편인 학생들도 분명 있다. 대개 생업을 위해 한국으로 오신 부모님들이 많기에 자녀가 등교하기 전에 출근하셔서 밤늦게 퇴근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신다. 한국의 부모님들처럼 살뜰하게 챙겨주시기는 커녕, 기본적인 부분마저도 학교에서 챙겨주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니 외양이 다소 꼬질한 친구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모든 다문화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 학생들보다 외양이 말끔하고 반듯한 아이도 당연히 있고, 가정에서 확실하게 교육받아 애살 넘치는 아이들도 많다. 고려인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여느 학부모님들과 같이 자녀에게 학업에 대한 기대를 품고 계신 도 계시고, 자녀의 학교 생활에 대해 학교에 전화하여 상담하시는 학부모님도 있다. 관심과 마음은 굴뚝같지만 단지 언어 소통이 불가능하여 문의하시길 주저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다양한 모습의 다문화 학생들이 있는데, 선생님들의 눈에는 어딘가 부족한 다문화 학생들의 모습만 유독 선명히 보이는 걸까. 놀다가 말썽을 피워도, 친구들과 심하게 장난을 치다가 걸려도, 수업 시간에 잠을 자도, 급식을 받고 또 받아 많이 먹어도, '다문화 학생이라서' 손톱만 한 문제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가 되고 만다. 한국어학급 학생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편견이 묻어날 때면 서러움과 서운함이 피어오른다.


  유난히 까불거리는 성격, 장난기가 심한 것, 목소리가 큰 것 등은 다문화 학생이어서라기 보다는 그 학생의 고유한 성격이 아닐까. 아이는 다문화 학생이기 이전에 한 개인인데, 아이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다문화 학생'에 맞추어져 있으면 계속 그리 보일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한 점은, 잘하는 학생의 모습은 다문화 학생이라는 영향이 크게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 '다문화 학생인데도' 잘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다. 이 말 또한 칭찬이긴 하지만, 아이가 못해낼 것임을 전제하고 있는 말이기에 마냥 기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사실, 우리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나도 그래 왔을 것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픈 것 같다. 편견과 고정관념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켜켜이 쌓여 온 것들에 의해 만들어져 버린 것들일 테니까 말이다.


  슬프게도 한국어학급 교사는 이러한 생각들을 의식하며 우리 아이들을 더 확실하게 지도하려고 오늘도 애쓴다. 예의를 가르치고, 인사하는 습관을 들이고, 옷도 단정하게 입고 잘 씻고 다닐 수 있도록 잔소리도 하고, 수업 시간에 덜 잘 수 있도록 같이 약속도 하고. 자유롭고 싶지만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 점차 나아지고 좋아지겠지만, 학교는 좀 더 빠르게 변화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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