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배우는 다문화 학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K가 잠에 취해 한국어 수업에 '또' 늦었다. 올해 3학년인 K는 한국어 수업을 3년째 듣고 있으므로, 수업 시간표에 맞추어 수업을 들으러 한국어학급 교실에 와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즉, 몰라서 못 온 게 아니라, 앞선 교과 수업 시간에 푹 자다가 2교시가 3교시로 바뀐 줄도 모른 채 잠에 취해 있느라 못 온 것.
교과 선생님들마다 "선생님, K는 제시간에 맨날 자요~"라는 말을 꼬박꼬박 해주신다. 자는 사람은 K인데 왜 내가 민망한 것인가. K를 불러 몇 차례 이야기를 했다.
"수업을 다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조금씩 들어보는 건 어때? 아는 단어가 가끔 나올 수도 있잖아.",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모르는 단어가 몇 개 들리면 노트에 써서 뜻 찾아보기 하자.",
"아니면, 한국어 리스닝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소리를 들어봐도 돼.",
"말하시는 속도도 빠르고 모르는 표현이 많아서 힘들겠지만, 조금만 노력해보자."
"듣다가 졸릴 수는 있는데, 처음부터 쭈욱 자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을까? 앞에서 수업하시는 선생님 입장도 생각해봐~"
"꼭 수업을 안 들어도 돼. 한국어 공부할 수 있는 과제를 줄 테니까 그거라도 하자."
"학교에서 종일 자고 가면 집에서 잠 안 오잖아. 내가 준 과제 하면서 깨어 있으려고 노력해봐."
"이제 곧 졸업하고 고등학교 가야 할 텐데, 잠만 자고 가면 시간 아깝지 않아? 이제 그만 자고 공부 좀 하자."
소용없었다. K는 여러 교과 시간에, 골고루 잤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K는 한국어가 서투른 편이었으므로 빠르고 거센 억양의 한국말로 채워지는 교과 수업이 재미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러니 멍 때리게 되고, 그러다가 잠이 오고, 잠이 들고, 아무도 깨워주는 이 없으니 종일 숙면을 취하게 되는 것이었다.
K는 학교에서 푹 자고 집에 가면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어떤 날은 집에서 새벽 4-5시까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온다고 했다. 악순환이었다.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K가 안 자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 걸까?', '노력할 마음이 있긴 할까?', '깨어있으라고 하는 게 K에게 그렇게 많이 어려운 일인가?' 나름대로 K에게 설명도 해보고, 부탁도 해보고, 향후 펼쳐질 미래에 대해 겁을 주기도 해 보았으나 나는 잠자는 교실의 K를 깨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었다. 진 빠지는 날들이 쌓이니 나 또한 무력함을 느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나의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드니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K는 포기하기엔 아픈 손가락이었다. 한국에서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러시아 스쿨에 다닐 때에는 수학과 과학을 잘했다던 아이, 수업시간에 무언가를 알려주면 한국어가 부족함에도 머리가 좋아 곧잘 이해하던 아이, 1학년 때부터 똘똘함이 숨겨지지 않고 티가 났던 아이. K를 잠시 만난 여러 강사님들께서도 K가 참 영리한 것 같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다만, 수업을 무리 없이 따라가기엔 아직 부족한 한국어와 그로 인해 느낀 무력함, 무력함이 쌓이다 보니 학습된 무기력에 의해 성장하지 못한 아이. 지금이라도 마음 잡고 한다면 충분히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아이임을 너무 잘 아는지라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K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답 대신 막막함이 앞섰다.
K가 잠에 취해 한국어학급 교실에 '또' 오지 않던 어느 날. K를 데리고 온 나는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앞으로 너 데리러 오지 말까? 그냥 자게 내버려 둘까? 지금 이게 몇 번째야? 아니, 몇 년째 이러고 있어?" 쌓인 답답함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계속 같은 지도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짜증과 화, 답답함, 그리고 조금만 같이 노력해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K에 대한 야속함, 안타까움, 곧 K를 졸업시켜야 하는 교사의 조급함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느껴지는 감정에 화를 낸 것을 후회했다. 책임감과 미안함. '내가 조금만 더 동기부여를 잘했더라면 K가 이토록 무기력하진 않았을까?', '내가 화를 내도 되는 걸까?'와 같은 생각이 드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금세 마음의 불을 꺼뜨리고 나의 진심을 전했지만, 그것 또한 K로 하여금 잠을 덜 자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동기를 심어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리라.
어찌 보면 모든 학습의 시작은 '동기 부여'이다. 내적 동기라면 말할 것도 없고 외적 동기라 할지라도 동기가 부여되면 딱히 누군가가 학습 내용을 집어넣으려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게 되니까. 하지만 K를 비롯한 한국어학급의 몇 아이들에게는 아주 조금의 외적 동기조차 없는 상황이다. 왜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지 모른 채 '일단'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여담이지만 같은 맥락에서, L은 학교에 다니는 이유가 단지 '비자 유지'를 위해서라고 했다. 비자가 있어야 한국에 머무를 수 있으므로 학교에 다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기 싫어도 오는 것이라고. 이처럼 '그럼에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있어야만 하게 되는데, K에게는 그게 없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 화를 내놓고는 미안해졌다.
자신의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한국에 온 다문화 학생에게 어찌 동기부여를 해야 했을까. 한국어 학급 담임으로서의 역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3년간 해내지 못했기에 다음을 위해서라도 풀어야 할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