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끝나면 새로이 학교를 옮기게 된다. 이로서 한국어학급 담임도 3달이면 끝이 난다.
한국어학급 담임을 처음 맡던 해에는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른 어려움을 겪을 때면 내 선택이 옳았던 것인지 의심을 하기도, 고충을 나눌 수 없어 외롭기도, 한국어가 서툰 아이들이 괜히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선택이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옳았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3년 전 한국어학급 담임교사를 해보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글에 담긴 모든 것들을 알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아이들 덕에 다양한 문화와 생각을 접할 수 있게 되어 시야가 넓어졌고, 은연중에 지니고 있던 편견이 깨졌으며, 다름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고,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비로소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길을 걷다가 혹은 버스를 타다가 외국인 학생을 보게 되면 시선과 더불어 마음이 간다. 학교에서 잘 생활하고 있을지, 어떤 고충을 겪고 있을지, 더불어, 부디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다른 도시에 여행을 갔을 때에도 외국 음식점과 상점, 유심을 파는 휴대폰 가게, 환전소 등이 펼쳐진 외국인 밀집 거주 지역을 지날 때면 '이 부근 학교에도 다문화 학생이 참 많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더불어 이전까지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건실하다고 여겼던 한국의 공교육 체제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한국의 공교육 체제를 바라보니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라고는 하지만, 학교는 아직 그럴 준비가 덜 되어있는 듯하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받아들이고 변화해야 하는지를 순간순간 많이 알아차리게 된다.
하지만, 역시나 한국어학급이 내게 남겨준 가장 소중한 것은 아이들과 주고받은 크고 작은 감정들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온전하지는 않아도 그나마 아이들의 입장을 헤아리며 챙기는 교사는 한국어학급 담임교사뿐이므로, 아이들이 애살있게 티 내지는 않아도 내게 많이 의지하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나 외의 다른 교사와는 거의 교류가 없고, 사실 교류를 하기에도 어려운 지라 내가 좀 더 챙기려고 했던 순간들이 모여 아이들과의 진득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언어로 소통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니 서로의 눈빛과 표정을 읽으려 부단히 애쓰고, 그 속에 담긴 감정을 파악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했으므로, 그 과정에서 쌓인 마음들은 언어를 통해 쌓인 것들보다 깊고 두텁다. 이제는 서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길고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제 겨우 첫 학교에 발을 떼려는 병아리 교사이지만, 한국어학급 담임교사로 지내던 시간만큼은 3년 치 이상으로 성장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들을 생각한다면, 우리 아이들과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의 큰 전환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과의 시간이 너무 고맙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