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생각들
2012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된 '옥수수와 나'라는 소설에는 자신을 옥수수라 생각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닭들이 자신을 옥수수라 생각하며 쫓아온다고 믿는 남자에게 의사는 이제 당신은 옥수수가 아닌 걸 알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남자는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라고 반문한다.
어디서나 흔하게 통조림으로 살 수 있는 옥수수이지만 집에서 물을 계속 보충하는 수고를 감수하며 직접 쪄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옥수수알이 튀어 오르는 위험에도 손주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어 하는 어머니 토시코가 만들어주는 옥수수튀김만큼은 아니어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콘샐러드나 만들어먹을 생각이었다. 옥수수를 감싸고 있는 종이 같은 이파리들을 하나씩 떼고 있자니 대체 왜 이렇게 두꺼운 보호막을 만들었을까 궁금해졌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로 유명한 옥수수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약간의 영양분을 이 보호막을 만들기 위해 모두 써버린 것은 아닐까. 옥수수알 하나하나에 비밀이라도 담듯이 빈 곳을 채워가면서 누군가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잎을 모두 뜯어 속살을 보게 된다면 제가 그 비밀을 알려드릴게요.라는 듯이.
잎은 상당히 뻣뻣하고 종이 결같이 반듯한 선이 나 있다. 그것들을 하나씩 벗기고 있자니 옥수수가 아주 흔했던 도시, 멕시코 시티가 떠오른다.
마야인들은 인간이 모두 옥수수에서 나왔다고 믿었다고 한다.
아주 옛날에 암흑이 지배하던 때에 신이 인간을 어떤 재료로 만들지 고민했다. 아마 당시에도 옥수수는 흔했을 테니까 옥수수로 만들기로 했단다. 동이 트기 전 신은 열심히 하얀색과 노란색 옥수수로 남성과 여성을 만들고 옥수수가루로 팔과 다리를 만들었다. 또 죽을 만들어 근육과 힘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인간이 너무 똑똑했고 시력이 좋아서 신의 영역을 자꾸 넘보았다. 그래서 신은 인간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고 계속 발전했던 인간은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옥수수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나라면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옥수수 한 알 당 한 명씩 만들었을 텐데 과연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옥수수 껍질을 슥슥 그려보았다.
설탕과 소금을 톡톡 쳐서 냄비에 30분 이상 푹 쪄낸 옥수수는 안타깝게도 안쪽이 모두 썩어있었다. 갓 쪄낸 옥수수는 노란색이 참 예뻤지만 안에 품고 있던 진실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바로 밖으로 나가 삶은 옥수수 3개를 사 왔다. 원래 계획했던 콘샐러드를 완성하기로 했다.
레시피는 간단하다.
샐러드 재료로 파프리카, 양파(양파피클 만들어 둔 것), 어린잎채소, 땅콩 조금을 추가했고 드레싱은 화이트 발사믹 식초, 올리브유, 설탕과 후추로 휙휙 저어 만들었다. 색 조합을 굳이 신경 쓰지 않았지만 선명한 색감에 눈이 부셨다. 옥수수를 알알이 모두 빼는 것도 꽤 시간이 걸렸는데 식사를 하면서 알이 다 빠져 초라해진 옥수숫대가 눈에 들어왔다.
알이 다 빠진 옥수수는 세로로 길게 세우면 중국의 어느 신도시의 고층 아파트 같기도 하고 눕히면 재건축을 앞둔 방콕의 무너져가는 건물을 떠올리게 했다. 파프리카 꼭지를 앞에 신호등처럼 세우고 나니 옥수수에서 태어난 사람이 생각난다. 옥수숫대를 넘으려고 하는 옥수수 인간은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그 앞에 서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