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한층 더 내 몸 관찰하기가 잘 되는 것 같다. 불안정한 심리나 부정적인 정서로 인해 나타나는 신체 반응까지 포함해서.
나는 특히 아침에 강한 불쾌감을 느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끔찍한 기분이다. 마치 밟히고 밟혀 더럽게 늘러 붙은 아스팔트 도로 위 껌딱지가 된 기분이랄까. 우울증이 심한 시절 살았던 하숙집과 고시텔에서 느꼈던 아침의 상태, 몹시 버겁고 죽을 것 같이 피곤하고 우울하고 비관적인 느낌. 예전에는 그 기분을 나와 동일시시켜서 함께 무너져 내리거나 그 감정에 짓눌려 버렸다면, 지금은 그저 가만히 느껴준다. ‘어, 이런 마음이 드네. 오늘 컨디션 진짜 안 좋은가 보다… 음, 진짜 별로 네. 이 느낌 정말 싫은데, 내가 이런 상태구나.’ 그리고 그 상태로 어쨌든 해야 할 일을 한다. 그 상태에 빠지면 하루 종일 누워있어도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저 할 일을 하다 보면 컨디션에 따라 금방 사라지기도 한다. 드물게 온종일 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좀 쉬어 주면 다시 돌아온다.
올라오는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껴주는 것이다. 그것을 애써 긍정적으로 바꾸려 들지 않고 모른 척 무시하지도 않는다. 온전히 느껴준다. 불쾌한 상황을 마주 보고 가만히 견디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있다 보면 그것이 지나가는 것까지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알게 된다. 아, 지나가는구나. 구름이 지나가듯이 감정도 지나가는 것이구나. 머물렀다가 떠나가는구나.
감정이 나에게 찾아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불안과 우울은 그중에서도 습관적인 것이 큰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에 오랜 기간 노출되었고 성인이 되어 우울증을 오래 앓았다. 감정이 얹혀있다. 음식 먹다 체한 것처럼 나는 슬픔이 걸려있다. 그 당시에 제대로 느껴주고 표현하고 소화시키지 못했다. 억눌린 감정은 이제라도 제대로 느껴달라고 계속 올라오게 된다. 그렇게 심하게 불안하거나 우울할 일이 아닌데도 센서가 과하게 작동한다. 몸의 비상 경보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것과 같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위험해. 도망쳐’ 이렇게 계속 소리치는 거다. ‘많이 불안하구나. 우울하구나. 근데 지금 이거 그럴 만한 일은 아니야.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야.’ 자꾸 알려줘야 한다.
불안하고 우울한 심리, 정서가 나아지는 확실한 방법은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편안해지는 방법이 뭐냐고?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장소, 행동, 먹거리, 사람… 그러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떨 때 편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마음에 집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예전에 쓴 글에서 나는 연약한 토끼라고 했다.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안전한 토끼굴이 필요하다고. 그렇지, 안전기지도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지. 그런데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호랑이에게 잡아 먹힐까 두렵다면 내가 호랑이가 되면 된다. 강해질 거다. 더 이상 숨고 회피하지 않고, 내가 나를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