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코엔 - 맥베스의 비극
셰익스피어 작품은 그 자체가 현대성을 띤 작품이다. 나는 언젠가 셰익스피어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건 잘못된 설명이다. 예술은 시대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양식으로 구분한다. 2023년에 르네상스 양식의 그림을 누가 그린다고 생각해 보자. 그게 현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절대 없다. 현대 예술은 현대라는 ‘시간’에 의해 정해지는 게 아니라 그 예술의 ‘양식’에 의해 결정된다.
르네상스 작품의 특징이 무엇인가? 인간 이성이 세계의 근원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르네상스 작품은 반드시 이상향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르네상스 그림은 ‘땅에서의 삶’을 나타내지 않고 ‘하늘에서의 삶’을 나타낸다. 르네상스인에게 땅은 경멸의 공간일 뿐이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건 하늘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이런 르네상스의 양식을 결여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대사는 마치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리는 것처럼 입 안에서 머문다. 셰익스피어의 대사는 한 편의 시이고 언어유희이다. 셰익스피어는 무언가를 지향하지도 않고 도덕적 설교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입 안에서 대사를 이리저리 굴릴 뿐이다. 이런 특성을 가진 작품을 뭐라고 하는가? 매너리즘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매너리즘 작가이지 르네상스 작가가 아니다. 이걸 아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매너리즘이란 무엇인가? 매너리즘은 한 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세계관을 의미한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적 세계관을 의심한다.
“르네상스는 인간 지성이 세계의 근원을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르네상스는 인간이 이데아를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인간 지성이 정말 세계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을까?”
매너리즘은 이렇게 르네상스의 세계관을 의심한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의심만 할 뿐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현대는 인간 지성이 세계의 근원을 포착할 수 있다는 믿음을 완전히 상실했다. 현대는 도덕이 아닌 법만 있을 뿐이고 덕이 아닌 표결 수로 정치 지도자를 선출할 뿐이다. 왜인가? 인간은 도덕이 무엇인지, 덕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는 실존주의적으로 살아갈 것을 권한다. 현대는 완전한 자포자기의 시대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의 세계관을 의심하지만 현대처럼 완전한 자포자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그렇게 매너리즘의 언어는 어딘가로 향하지도 못하고 포기하지도 못한 채 입 안에서 맴돌 뿐이다.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다.
매너리즘이 타성에 젖은 것과 같은 나쁜 걸 뜻하는 게 아니다. 매너리즘은 매우 현대적인 세계관이다. 르네상스라는 오만한 세계관을 의심하는 합당한 세계관이 매너리즘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관해 살펴보았으니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맥베스의 비극>이라는 영화를 보도록 하자. 이 영화는 매우 현대적인 작품이며 그렇기에 잘 만든 작품이다. 왜 그런가? 현대는 비판(Critique)의 시대다. 여기서 비판이라는 건 누구를 비난하고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판은 '잘라버린다'는 뜻이다. 오컴의 면도날처럼 말이다. 누가 '순수이성비판'이라고 말했다고 하자. 여기서 비판이란 무슨 뜻인가? 순수이성을 욕하겠다는 뜻인가? 아니다. 순수이성이 어디까지 알 수 있는가를 말해주겠다는 뜻이다. 순수이성이 자신이 알 수 없는 분야까지 넘어가려고 할 때 가차 없이 잘라버리겠다는 뜻이다. 이게 철학에서 말하는 비판(Critique)의 뜻이다.
이런 현대의 세계관 속에서 예술은 어떤 형식을 취하는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양식을 취한다. 두 예술 양식이 어떠한 것인가는 이미 상세하게 설명했다. <맥베스의 비극>이라는 작품은 모더니즘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세계를 포착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다. 이것이 몬드리안의 작품이다. <맥베스의 비극> 역시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자신만의 단정한 세계를 만들었다. 쓸모없는 모든 것을 다 잘라버리고 필요한 것들만 뽑아 매우 깔끔한 세계를 만들었다.
당신 역시 <맥베스의 비극>을 볼 때 매우 미니멀리즘하고 그렇기에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왜 그런가? 쓸모없는 모든 것을 비판(Critique)했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모든 것을 오컴의 면도날로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현대적인 작품인 것이다. 얼마나 깔끔한가? 이 영화는 양식도 깔끔하고 내용도 깔끔하다. 만약 어떤 교훈이나 감성팔이를 하려고 했다면 이 영화는 즉각 구식영화가 되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 것이다.
현대를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쓸모없는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나의 오만과 허영이 내가 현대인이 되는 걸 막는다. 나는 쓸모없는 모든 것을 잘라 버려야 한다. 그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며 현대를 사는 방법이다. 구시대적으로 사는 건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기생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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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tudiocroissant.com/watching-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