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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들 Dec 21. 2023

앤디 워홀이 역사에 남을 천재인 이유

예술은 어떤 의미도 담을 수 없다.

1. 앤디 워홀을 이해하기 위해서


앤디 워홀은 다빈치, 미켈란젤로에 버금가는 천재입니다. 앤디 워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사 전체를 알아야 하는데, 이런 어려움이 때때로 앤디 워홀을 향한 오해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예술사를 보면 어떤 시대는 재현을 중요시하고 어떤 시대는 재현을 포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르네상스를 보겠습니다. 르네상스는 무언가를 재현한 그림입니다. 라파엘로의 <대공의 성모>에는 분명 여성이 있고 아기가 있습니다. 반면 현대 추상예술은 어떤가요?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몬드리안의 <구성>을 보겠습니다. 그 그림에는 재현이 없습니다.


몬드리안 -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도대체 왜 어떤 시대는 예술에서 재현을 하고 또 다른 어떤 시대는 예술에서 재현을 포기하는가? 이 질문이 예술사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이 질문의 답은 “인간 지성이 세계를 포착할 수 있다고 믿을 때는 재현을 하고 인간 지성이 세계를 포착할 수 있다고 믿지 않을 때는 재현이 사라진다.”입니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또 물어야 합니다. “도대체 인간 지성이란 무엇인가?”


인간 지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자세한 사항은 이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다만 이렇게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가장 완벽한 상태’를 찾으려고 하는 게 인간 지성입니다. 라파엘로의 <대공의 성모>는 아무 여성이나 아기를 그린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 여성이나 아기는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라파엘로가 그리고자 한 건 가장 완벽한 여성과 아기입니다. 나머지 여성과 아기는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가장 완벽한 여성과 아이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라파엘로 - 대공의 성모


이는 마치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다른 세무-회계 자격증은 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무-회계의 가장 완벽한 자격증인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무슨 다른 자격증이 필요하나요? 세무회계 1급이요? 전산회계 1급이요? 그건 회계사 자격증의 복사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바로 지성을 우위에 둔 사고방식이며 예술에 어떤 대상이 있다는 건 지성을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그림을 몬드리안 그림보다 친근하다고 느낍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지성을 본능으로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지성을 사용하여 세계를 파악하려 합니다. 그러나 다른 흐름도 있습니다. 날카롭고 뛰어난 지성을 가진 자들이 오히려 지성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지성을 의심할 수조차 없습니다. 이는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이 서울대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대 성적에 한참 못 미치는 학생만 서울대를 향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수보다 재력과 지성이 한참 못 미치는 사람만 교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성을 의심하는 이들은 이제 묻습니다.


“인간 지성이 정말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장 완벽한 상태를 포착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내가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게 정말 실제 세계가 맞을까? 단지 내가 보고 있는 세계가 아닐까?”


태초에 생겼던 이 의심은 인상주의 시대에 이르러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 줍니다. 모네는 묻습니다. “루앙 대성당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는 답합니다. “인간은 루앙 대성당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가를 파악할 수 없다. 루앙 대성당은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변한다.” 그의 이런 선언은 엄청난 비난을 불러옵니다. 인간이 세계의 본질, 즉 가장 완벽한 세계를 포착할 수 없다는 건 인간을 향한 모욕입니다. 우리는 프로이트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자기가 갈 길을 갑니다. 이제 세계는 지성을 몰락시키고 감각을 우위에 두기 시작합니다. 인상주의는 모든 생각을 정지시키고 감각으로 포착한 세계를 그리겠다는 선언입니다. 인상주의와 르네상스 그림을 비교하면 우리는 이 사실을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는 화가가 세계 밖에서 세계를 조망한 그림인 반면 인상주의는 화가가 세계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지성을 향한 태도의 차이가 예술 양식의 차이를 부른 것입니다.


인상주의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성의 몰락은 현대예술까지 이어집니다. 지성의 몰락이 곧 현대 예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궁금증이 듭니다. 앤디 워홀의 예술에는 분명 대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앤디 워홀은 지성을 신뢰한 예술가인가요? 앤디 워홀은 현대 예술가가 아닌 걸까요? 






2. 앤디 워홀은 왜 천재인가?


앤디 워홀의 작품에는 분명 대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술에 대상이 있다는 건 지성을 향한 신뢰를 나타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앤디 워홀은 지성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지성을 비웃기 위해 대상을 그립니다. 그의 작품에는 르네상스 작품에서 느껴지는 진지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르네상스는 ‘정말로’ 지성이 세계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앤디 워홀은 지성의 그런 믿음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대상을 그립니다.


앤디 워홀 - 마오


앤디 워홀의 <마오>를 보겠습니다. 지성을 신뢰하는 예술가는 이 중국의 지도자를 어떻게 그렸을까요? 분명 라파엘로의 <대공의 성모>처럼 그렸을 것입니다. 이 중국의 지도자는 덕을 갖추고 있고 인민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카리스마가 있고 미래를 통찰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그림으로 보여주려 애썼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림은 입체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앤디 워홀은 이런 지성을 비웃습니다. 그는 그렇게 <마오>를 그립니다. 그는 중국 지도자가 얼마나 뛰어난 인간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마오>를 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정치 지도자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을 비웃습니다. 지성을 의심하지 못하고 지성이 절대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인간들을 비웃습니다. 이렇게 마오도 하나의 인간이 됩니다. 아니, 그는 원래 하나의 인간이었습니다. 인간 지성이 그를 보통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위인으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현대 예술은 어떤 의미도 부정합니다. 의미는 지성의 소산입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지성은 몰락했고 그렇게 의미도 증발했습니다. 앤디 워홀은 이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아직까지도 지성의 절대성을 믿는 사람들을 비웃습니다. 그는 심지어 이제 ‘예술 작품’이 아닌 ‘상품’을 만들 뿐이라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예술은 그동안 자기가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나요? 예술이 왜 설거지보다 위대한가요? 예술이나 설거지나 다 인간 활동일 뿐입니다.


예술은 이제 자신의 ‘특별함’이라는 걸 부정하기 시작합니다. 앤디 워홀이 그 선봉장에 섰고 그렇게 그는 역사에 남을 천재가 되었습니다.






(제 브런치에 없는, 미술과 관련된 또 다른 글들을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studiocroissant.com/painting-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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