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현대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오히려 '무엇이 현대예술이 아닌가'를 말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의미를 말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건 현대예술이 아닙니다. 설교를 늘어놓고 유의미한 교훈을 주려고 하는 건 현대예술이 아닙니다. 현대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세계관을 반드시 이해해야만 합니다. 예술은 세계관의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현대예술이냐고 되물을 수 있겠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저는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를 읽으라고 말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예술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하며 헛소리를 남발하는 소설 속 인물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인물들을 보십시오. 아, 이 인물들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이 인물들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들처럼 알지도 못하는 것, 알 수도 없는 것에 대하여 말하며 스스로의 삶을 망치고 있는 장본인입니다. 차라의 다다선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발 헛소리로 삶을 망치지 말라고! 고통을 직시하고 고통과 함께 살아가라고!
현대예술은 당신에게 차가워지라고 말합니다. 거짓된 달콤함 속에서 사느니 진실한 고통 속에서 죽으라고 말합니다. 현대예술을 이해한다는 건 단순히 머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마음의 문제입니다. 현대예술가들은 엄청난 결의를 가지고 삶을 대합니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쉬울까요, 모든 의미를 다 포기하는 게 쉬울까요? 포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버리는 게 다른 그 어떠한 것보다도 어렵습니다. 자아를 포기하는 게 비대한 자아를 갖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우리는 헛된 의미로 우리 삶을 둘러쳐서는 안됩니다. 고통을 직접 마주하고 고통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 잔인할 정도로 솔직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하나만 당부하겠습니다. 이 책 만큼은 반드시 영어로 읽어주세요. 매우 짧기 때문에 영어로 읽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괜히 영어로 읽기를 추천하는 게 아닙니다. 이 소설의 가치를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꼭 원문으로 읽어야만 합니다.
이 단편이, 이 짧은 소설이 수많은 두꺼운 책들보다 훨씬 더 예술적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읽으십시오. 이 단편이 바로 현대예술 그 자체입니다.
(제 브런치에 없는, 미술과 관련된 또 다른 글들을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studiocroissant.com/reading-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