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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들 Feb 11. 2020

개나리 노오란 꽃그늘 아래

내게 무한한 용기를 주는 나의 아빠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아기는 사알짝 신 벗어놓고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갔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7살 어린이는 다음 날 음악 시간에 부를 노래 <꼬까신>을 흥얼거렸다. 선생님 말씀을 하늘처럼 떠받들던 어린이에게 ‘예습, 복습과 숙제는 철저히!’라는 급훈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로 깰 수 없는 지엄한 약속과도 같았다. 그렇게 잠들기 전까지 저녁 나절 내내 노래를 예습하며 흥얼거렸고, 어느새 입에 가사가 붙어서 머리로 기억해내기 전에 가사가 먼저 툭 튀어나오는 경지에 이르렀다.


잠들기 전까지 부르던 노래는 다음 날 아침을 먹으면서도 이어졌고, 학교에서도 ‘<꼬까신> 노래 예습 해오기’ 숙제를 검사하는 선생님께 칭찬까지 들으며 노래를 완벽하게 숙지했다. 그런데, 칭찬을 먹고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진 순진한 7살 꼬마에게 옆자리 짝꿍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야 너 그거 알아? 꿈에 꼬까신이 나왔을 때 신발을 신었는데, 발에 안 맞으면 죽는대!”


“거짓말! 그런 게 어디 있어?”


“아니야, 진짜야! 우리 오빠가 그랬어. 다행히 오빠는 발에 잘 맞아서 꿈에서 깰 수 있었대. 나는 아직 꿈을 꾼 적은 없는데 꿈에 꼬까신이 나올까 봐 너무 무서워.”


7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무서운 이야기라고는, 어렸을 때 우리 남매를 잠깐 맡아 키워준 이모에게 “밤 늦게까지 안 자고 있는 애들은 망태 할아버지가 쫓아와서 잡아간다!” 정도의 얘기를 들은 게 전부였다. 그런 나에게 “우리 오빠가 직접 겪었대!”라는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경험담이 섞인 무서운 이야기는 공포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그럼에도 어린아이 특유의 짧은 집중력과 기억력으로 몇 시간 지나자 ‘꼬까신 괴담’은 머릿속에서 금방 사라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날 밤에 벌어졌다.




일 때문에 늦는 날이 많았던 아빠가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와 가족 모두 함께 저녁을 먹었다. 숙제를 끝내고 티비를 실컷 보다가 자기 전에 다음 날 가져가야 할 준비물들을 모두 챙겼는지 확인하고 엄마가 깔아준 이불 위에 기분 좋게 누웠다. 바로 잠들지 못해 한참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스르륵 잠이 들려던 찰나, 문득 낮에 친구가 해줬던 ‘꼬까신 괴담’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도 계속 생각하면 더 무서워질 것 같다는 생각에 베개를 베고 있던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애써 잊어내려고 했다. 그렇게 분투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나오고야 말았다. 그 ‘꼬까신’이 말이다. 꿈에서 나는 마루가 넓은 옛날식 한옥 마당에 서있었고, 마루에 올라서기 위해 신발을 벗어 놓는 디딤돌 위에 작은 꼬까신이 한 켤레 나란히 놓여있는 게 아니던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가운데, 도망가고 싶은 마음 반, 신어보고 싶은 마음 반이 다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꿈에서 나를 이끄는 어떤 힘에 의해 신발 앞으로 다가섰고, 한쪽 발을 들어 신발에 집어넣으려던 찰나, 잠에서 깼다. 눈을 번쩍 뜬 순간, 깜깜하게 불이 꺼진 방 안에서 급격하게 치솟는 두려움과 무서움에 참을 수 없어 방문을 열고 거실에 있는 엄마, 아빠에게로 달려갔다.



“내가 꿈에서 꼬까신이 나왔는데, 그거 신으려고 했는데,
그게 발에 안 맞으면 내가 죽는대. 그런데 내가 신발을 안 신으려고 했는데,
신게 됐는데, 깼어. 또 잠들면 꿈에 신발이 나와서 나 죽으면 어떻게 해?”


말도 안 되는 말을 뭉개듯 흘리듯 엄마, 아빠 앞에서 털어놓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부모님은 애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채 영문을 몰라 했고, 아빠는 나를 안아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다시 자리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상태에서 아빠는 차근차근 내 얘기를 다시 들어줬다. 그리고 울음이 그칠 때쯤 되어서야 아빠는 울음의 영문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아빠는 여느 부모들이 그러했을 것처럼 나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해주며 “그런 꿈 얘기는 다 지어낸 거야. 그리고 만약에 꿈에 다시 신발이 나왔는데 발에 안 맞아도 괜찮아. 아빠가 데리러 가면 되지.”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한 마디에 안심한 나는 실컷 운 탓에 진이 빠져서인지 금방 잠들 수 있었고, 한 순간도 꿈꾸지 않고 깊고 또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나에게 아빠는 세계였고 우주였다. 아빠의 토닥거림에 평화를 찾을 수 있었고, 아빠의 말 한 마디에 무서운 꿈에 맞설 용기를 낼 수 있었다. 7살 아이에게 전부였던 아빠는 9살 때 전학 가서 적응하지 못할 때도, 14살 때 친구들과의 트러블로 힘들 때도, 19살 그리고 22살, 25살 때 바라 마지않고 그토록 원했던 일에 실패했을 때도 언제나 한 발자국 뒤에서 나의 계획과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믿어주셨다. 그렇기에 살아가면서 7살의 용기보다 훨씬 더 큰 자신감이 필요한 오늘도 나의 뒤에서 보이지 않지만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을 아빠를 생각하며 버틸 수 있는 것이리라. 나의 세계이자 우주인 아빠의 믿음을 저버릴 수 없기에, 나는 매일을 충실하고 또 진실되게 보낼 수 있는 것이리라.


©푸들 with 스튜디오 크로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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