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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들 Apr 13. 2020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린 우리들

바이러스, 그 이면이 우리에게 상기시킨 의외의 따스함

말 그대로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렸다. 


독립해서 나와 산 후로 한 달, 길어도 두 달에 한 번은 꼭 갔던 집에 발걸음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홍길동도 아닌데,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할 수 없었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으며 보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볼 수도 없었다. 그저 전화기 너머의 음성으로, 손가락 몇 번 톡톡 두드려 주고 받는 메시지로 서로의 생사와 안부 만을 확인했을 따름이다.



“엄마네 식당은 괜찮아요? 가뜩이나 손님 많은 가게라서 사람들 왔다 갔다 하면서 옮을까 걱정 되네.”


“답답하지만 마스크 쓰고 서로 거리 두면서 일해서 괜찮아. 마스크는 있어? 요즘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야 아주.”


“다행히 예전에 미세먼지 때문에 미리 사둔 마스크 있어서 괜찮아요. 엄마는 마스크 넉넉하게 있어요? 난 엄마, 아빠가 더 걱정이야. 두 분 다 고혈압이랑 신장병 같은 지병이 있으니까… 나이도 있으시고.”


“안 그래도 약 받으러 매달 병원 가야 하는데 병원 가서 되려 병 얻어 올까 봐 걱정이긴 한데… 그렇다고 병원 안 갈 수도 없어서 갔다가도 금방 오고, 마트에 가서도 필요한 것만 후딱 사서 오고 있어. 너도 마스크랑 손소독제 필수로 들고 다녀. 그나저나 우리 딸은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나도 집에 가고 싶어요. 엄마 밥 먹고 싶은데…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교통 이용하면서 보균자 됐는데 잠복기라 모르고 있다가 엄마, 아빠한테 옮길까 봐 무서워서 집에 못 가겠어요. 지병 있고 나이 있으신 분들은 대부분 걸리면 중환자실로 직행이더라고요.”



2~3일에 한 번씩 통화를 하고 매일 오전 가족 단체 카톡방에 안부를 물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하루, 이틀에서 열흘로, 한 달로 길어지면서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때때로 우리 가족이 이렇게 서로에 대해 애틋했었나 하는 새삼스러운 감정이 몰려들며,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깨끗한 하늘과 맑은 물만 돌려준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사랑, 걱정, 위로와 같은 따스함을 다시금 상기시켜준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이러스가 고마운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나보다는 가족을 걱정해 보고싶어도 꾹 참고 일부러 조금 더 멀찍하게 우리 사이의 거리를 넓힌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걱정하기에 미안해서라도 잡았던 약속을 취소하거나 미루고 있다.

나 하나쯤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나 아닌 모든 사람들을 괴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기심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노력하고 희생하는 와중에도 규칙과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다. 그럼에도 이들을 굳이 많이 미워하지는 않으려 한다.

대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건강함에 안도하며 우리를 위해 고생하고 애써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더 많이, 더 자주 가져보려 한다.

힘든 시기이기에 오히려 미움보다는 감사함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보려 한다.


우리 사이 거리가 좁혀질 그 날을 기다리며...


손 한 번 스윽 잡는 애틋한 애정 표현 조차 힘든, 참으로 어려운 때를 지나고 있다. 하지만 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시기를 지나면서도 우리는 서로가 있기에 버티고 이겨내고 있다. 한창 마음 속 겨울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이번 봄은 예년과 다르게 조금 늦게 찾아올 모양이다. 그렇지만 조금 늦게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봄은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내음과 함께 반드시 올 테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손 붙잡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갈 그 날을 기대하며 지금의 이 고됨과 수고로움을 기꺼이, 아주 기꺼이 이겨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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