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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Mar 01. 2024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그림책『나는 고양이가 싫다』를 읽

나는 고양이가 싫다. 
의사 앞에서는 팔팔한 주제에 
혼자서는 트림도 못하고 똥도 못 눈다. 
밥을 먹은 건 금방 잊어버리면서 
내 잠을 방해하는 건 결코 잊지 않는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겁내는 것에는 강아지와 고양이도 있다. 강아지는 짖으며 달려드는 것이 무섭다. 꼭 나를 물어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길을 거닐다 저 멀리서 강아지가 보이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다른 길로 피했다. 그러는 중에도 심장은 빠르게 뛰어 내 불안함을 증폭시켰다. 고양이에 관한 생각은 '요물'이었다. 도둑고양이(지금은 길고양이)를 길에서 마주치면 엄마가 핀잔을 주며 쫓았다. 

“저 눈빛이 싫어. 응큼한 요물 같으니라고….”     


  나와는 다르게 우리 집 아이들은 다른 집 강아지를 쫓아다니기도 하고, 길고양이를 만나면 쓰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동물을 키우고 싶어 했고 조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엄마는 무서워”, “고양이든, 강아지든 어떻게 같이 살아. 날 물까 봐 두려워”, “너희 독립하면 키워. 근데, 엄마는 겁나서 너희 집에 못 간다.”    

 

  2022년도 봄, 내가 맡고 있던 학급에서 중증 장애학생과 학부모로 인해 어려운 일이 발생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찾으며 노력했지만, 그 누구도 만족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할수록 실마리를 찾는 게 아닌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정신과 상담까지 받던 중에 의사 선생님은 도피, 회피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는 일을 중단하길 권했다. 일에만 매달렸기에 일이 아닌 것에 관심을 쏟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급의 일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나는, 나만을 위한 것을 할 용기는 없었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면서 나도 관심을 쏟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남편과 상의하며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렇게 나는 집사가 되었다. 물론, 성급한 결정은 아니었다. 자라는 아이들 덕분에 '고양이는 요물'이라는 과거의 기억은 자연스레 바뀌는 중이었다. 처음,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고양이 카페에 가면 애들과 남편만 들여보내고 창문 넘어 보기만 했다. 고양이들의 행동이 귀엽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무료해 보이기도 한 그 모습을 보며 점차 '이쁘다', '사랑스럽다', '만져보고 싶다'로 생각이 흘렀다.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용기 내었다. 두근대는 마음을 붙잡고 고양이들이 가득한 실내로 들어갔을 때, 난 딸아이의 옷자락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전신의 털이 바짝 선 채로 떨며 자리에 앉았는데 고양이 몇 마리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다행히 고양이는 긴장한 내 곁을 무심히 지나갔다. 어떤 고양이는 적당한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졸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며 무서운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다고 바로 키울 수는 없었다. 며칠 키우다가 다시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고, 힘들어서 포기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고민 상담을 요청했다. 그중 다묘(多猫) 가정의 지인에게 아가 고양이부터 키우면 괜찮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나에게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용기의 말이었다. 그때부터 아가 고양이와의 만남을 준비했고, 드디어 우리 집에 올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500g도 안 되는 새끼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오니 꼬물거리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물론 그때도 난 그 녀석을 만지는 것도, 안는 것도 덜덜 떨었다. 거실 바닥을 돌아다니는 아가 고양이를 졸졸 뒤 따라다니는 내가 어이없었지만, 아직 무서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니 그럴 수밖에.  

   

  아이들이 지어 준 이름은 ‘모카’였다. 아가 고양이 모카는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3일 만에 감기가 들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난생처음 동물병원에 갔다. 그곳에는 큰 고양이, 강아지들이 보호자들과 대기하고 있었다. 동물들은 얌전히 있었지만 나는 두려운 마음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둥둥 떠다녀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내가 무섭다고 아픈 꼬물이를 두고 갈 수도 없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내 안의 모성애, 책임감 같은 것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두근거리는 첫 진료를 마치고 오니 난 진땀으로 등이 축축했다. 모카도 힘들었는지 바로 곯아떨어졌다.      

  며칠 동안 이 녀석을 간호하며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키워도 절대 안방은 안 돼!’했던 내가 모카와 한 베개를 기대어 눕는다. 처음엔 곁에 오지도 못하던 고양이가 나를 의지하는 게 전해졌다. 모카와 나는 서로를 향해 관심을 보이며 낚시 놀이, 숨바꼭질하며 뛰어다니기 등 꼭 아이 키울 때처럼 사랑이 점점 차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제일 아끼는 사이가 되었다.     


  매일 아침 5시 전후로 모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내가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다 발이 바닥에 닿으면 모카는 몸을 돌려 조금 열려있는 방문을 비집고 거실로 나간다. ‘잘 잤다’라는 신호로 짧은 앞다리를 쭉 펴며 몸을 늘리는 모카, 나 역시 두 팔을 머리 위로 뻗으며 기지개를 켠다. 모카와 나 둘이 쭉쭉이를 한 후, 눈을 마주치며 뽀뽀로 아침 인사를 나눈다. 나는 곧장 주인님의 아침밥을 챙기고 모카의 화장실을 살핀 후에 출근을 준비한다. 일하는 내내 모카가 보고 싶어 아쉬운 마음인데, 퇴근할 때 문 앞에서 앞발을 들고 야옹거리는 모카를 만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혹시 안방 깊숙한 곳이나 캣타워에서 자고 있다가도 꼬리를 곧추세우고 쏜살같이 달려 나와 바닥에 뒹굴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늦는 날에는 “집사야, 왜 안 오냥?”이라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림책 『나는 고양이가 싫다』는 딸이 데리고 온 고양이 한 마리와 무뚝뚝한 아빠의 이야기이다. 고양이 키우는 것을 반대했지만 딸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허락한다. 집에 온 이후 매일 사고만 치는 검은 고양이가 귀찮은 아빠는 ‘나는 고양이가 싫다’라고 반복하여 말한다. 하지만, 고양이가 아플까 봐 병원에 데려가고, 트림시키기 위해 고양이 등을 토닥이기도 하며, 때에 맞춰 밥을 챙겨준다. 15년 후 고양이와의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 첫 만남 때 보여 줬던 그 천진한 눈을 맞추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고양이를 떠나보낸 후 아빠의 책상 한편에는 고양이의 사진과 유품을 함께 올려져 있다.     

 

  고양이를 키우니 고양이에 대한 그림책을 보면 우리 모카를 생각한다. 

고양이의 일생을 함께 지내며 무뚝뚝한 아빠의 ‘고양이가 싫다’라는 말에는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깊게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양이가 곁을 떠날 때의 아빠가 느끼는 슬픔과 떠난 후의 그리움을 보며 모카와의 헤어짐을 상상한다.    

 

  책 속의 아빠와 나는 고양이에 대한 처음은 부정적이었다. 나는 두려웠고, 아빠는 귀찮았다. 그러나 고양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며 보낸 시간은 서로를 가장 소중한 사이로 바꾸었다. 나는 모카를 키우며 무섭고 두렵게 여겼던 강아지도 길에서 만나면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돌보고 살필 존재가 있어 힘든 시간에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었고, 모카로부터 받는 사랑에 나 역시 행복하다. 모카와의 헤어짐은 아직 멀었지만 함께하는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모카와 사랑하며 지내련다.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작게 울음소리를 냈다. 
야옹 야아옹 
나는... 나는... 
고양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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