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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Mar 30. 2023

벚꽃과 웨딩드레스

3월 30일. 올해로 결혼한 지 딱 10년이 되었다. 


결혼식날, 11시 첫 타임 식이라 동트기도 전에 서둘러 메이크업샵으로 향했다. 지금보다 8kg 더 날씬한 몸을 오프숄더 웨딩드레스에 넣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두꺼운 메이크업을 했다. 거울 속의 나는 처음 보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동화책에서만 보던 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늦게까지 뒤척인 데다 일찍 일어났음에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몸의 감각이 멈춘 듯 오로지 웨딩드레스를 입은 거울 속의 낯선 나만 보였다.


식장으로 가는 길. 드레스가 구겨질까 등도 기대지 못하고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혹시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 봐 물도 마시지 못하고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이 내미는 초콜릿도 차마 입에 넣지 못했다. 아름다운 신부가 되기 위한 마지막 여정이었다.


그때 차창 밖으로 벚꽃이 보였다. 한 나무에서도 해가 잘 드는 부분은 활짝 피어있고, 반대쪽은 꽃봉오리가 매달려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벚나무 사이를 지나가려니 딴따따단 결혼식 예행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붙인 속눈썹 탓에 눈은 까슬거리고 뱃속은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벚꽃은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나니까, 벚꽃마저 아름다운 거라고 마음껏 생각했다. 


결혼식을 위해 새벽부터 준비한 시간보다 식은 더 짧고 싱겁게  끝났다. 활짝 핀 벚꽃 봄비에 후드득 떨어져 버리듯 그렇게 잠깐이었다. 결혼식을 마치자 스프레이를 잔뜩 뿌려 떨어지지 않는 머리카락과 속눈썹, 잘 지워지지 않는 두꺼운 신부화장이 남았다. 


누군가에겐 매일 중에 하루, 그냥 흘러가는 날이기도 할 3월 30일에 나는 벚꽃을 보며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설레던 나를 떠올린다.


10년 전 신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머리에 새치가 내려앉았다. 사랑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던 젊음이 지나고 현실에 허덕이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10년의 시간은 그런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차 안에서 나를 축하해 주던 벚꽃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네.' 

라고 생각했다. 내년도 후년도 또 10년이 흐른 3월 30일에도 나는 젊은 날의 신부였던 내 모습을 떠올릴 테고 올해도 벚꽃은 그대로 아름답구나 생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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