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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Nov 23. 2022

빨간맛 육개장

육개장

아이들이 육개장도 먹는다고? 여기 있다. 우리 집 아이들. 7살, 9살 남매는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어려서부터 먹은 탓에 다른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매운 음식이나 토속적인 음식도 잘 먹는 편이다. 오늘 메뉴는 육개장.


푹 삶은 소고기 국물에 봄에 얼려 둔 죽순, 여름에 얼려 둔 고구마 줄기와 대파, 숙주를 넣고 들깨가루를 넉넉히 풀어준다. 소여사가 직접 기름에 고춧가루 볶아 만든 고추기름까지 넣어주면 빨간 색깔이 침샘을 자극하는 진한 육개장이 완성된다. 때에 따라 말려둔 고사리, 토란대를 넣기도 한다.


소여사가 끓이는 탕에 들어가는 나물은 대부분 나물이 많이 나는 철에 말리거나 얼려둔 것들이다. 고사리나 토란대는 볕에 잘 말려 수분만 빠져나간 탓에 물에 불려 삶으면 원래 나물보다 향은 진하고 식감은 더 쫄깃하다. 봄에 땅을 뚫고 올라온 부드러운 죽순은 삶아서 길게 찢어 봉투에 넣어 얼려 두었다가 해동해서 사용하면 죽순의 부드러움이 그대로 살아난다.


소여사는 봄에는 나물을 캐고 말리느라 가을에는 고추, 들깨, 참깨 같은 곡식을 저장하느라 손이 바쁘다. 소여사의 바지런함 덕에 사계절 말린 나물을 넣은 탕이나 나물 반찬을 먹을 수 있고, 방앗간에 짠 고소한 참기름에 밥을 비벼먹을 수 있다. 우리 땅에서 자란 건강한 식재료로 맛있게 요리해주신 소여사 덕분에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가족여행을 가면 늘 소여사가 반찬이며 국을 바리바리 싸느라 너무 힘들어 보였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시라고 큰소리를 치고선 마트에서 인스턴트 음식을 사 갔다. 장바구니에 담겼던 육개장 두 봉지를 냄비에 붓고 데우려는데 옆에 있던 소여사가 혀를 끌끌 차셨다.

"거봐라. 이게 무슨 육개장이냐. 건더기를 세겠다, 세겠어."(너무 적어서 셀 수 있다는 표현)

간편함과 신속함으로 승부를 걸어보려고 했는데, 맛과 영양면에서 승부가 되질 않았다. 인스턴트 육개장 완패.......


한식파인 우리 첫째는 할머니표 육개장을 보자마자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더니 "캬!" 어른이 낼법한 소리를 내고는 할머니께 얼른 엄지를 내민다. 그리고선 밥 한 공기를 국에 말아먹는다. 매울 법도 할 텐데 국물까지 남김없이 싹싹 먹는 모습에 소여사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아직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둘째는 육개장에 들어있는 소고기를 쏙쏙 골라먹고 가장 좋아하는 죽순을 집어 먹는다. 국물 한 번 먹어 보라는 말에 국물을 한 숟가락 먹더니 물 한 컵을 들이켠다. 먹는 방법도 속도도 다르지만 두 아이 모두 육개장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워낸다.


국물이 잘 배인 육개장 건더기를 크게 집어 올려 입에 넣으니 나물이 아삭거리고 대파와 양파의 단맛이 느껴진다. 육개장 국물은 고추기름 덕에 매콤하고, 들깻가루 덕분에 걸쭉하고 진하다. 넉넉히 넣은 소고기는 씹을수록 고소하다.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밥 한 번, 국물 한 번, 건더기 한 번 번갈아 먹는다.


감사 인사 대신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워내는 것으로 소여사에게 충분한 피드백이 된 것 같다.

"다음에는 더 많이 끓여야겠다!"

하시는데...... 지금도 냄비가 넘치는데...... 지금도 충분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 해서 꿀꺽 삼켰다. (괜히 혼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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