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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Jan 01. 2023

돼지등뼈의 업그레이드

등뼈김치찜

첫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소여사의 등뼈김치찜이다. 할머니께서 오늘 해주신다 약속을 했더니 어제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고 성화다. 등뼈의 핏물을 빼고 삶는 과정이 길고 손이 가는 음식이건만 소여사는 주말까지 손주를 위해 요리를 하신다.


점심때 맞춰 먹으라고 오전 내내 부엌에 서 계셨을 것이다. 소여사의 분부에 아빠는 익숙한 스테인리스 통에 등뼈김치찜을 가득 담아 가져다주셨다. 두 아이들은 번갈아가며 할아버지를 꽉 안아드리는 것으로 감사를 대신했다.



아직 식지 않은 등뼈김치찜을 큰 접시에 옮겨 담았다. 포기김치는 한쪽에, 등뼈는 그 옆으로 차곡차곡 올렸다. 이제 막 한 밥에서는 뽀얀 김이 올라왔다. 식탁 가운데 접시를 놓고 밥 한 공기씩을 앞에 두고 앉았다. 등뼈김치찜에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집게와 김치를 집어 밑동을 잘라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던가? 앞접시에 등뼈 한 개씩을 올려주자 모두들 익숙한 손길로 살만 쏙쏙 발라먹는다. 졸여진 김치를 좋아하는 첫째는 김치와 고기를 함께 밥에 올려 먹고, 둘째는 살만 연신 발라내고 뼈는 옆에 둔 대접에 넣는다.


잘 졸여진 등뼈는 살이 부드럽게 떨어진다. 김치는 짭짤하면서 감칠맛이 돈다. 밥 한 술 뜨고 고기 한 번, 김치 한 번 먹다 보니 어느새 밥그릇이 비워지고 접시에 가득했던 등뼈김치찜도 동이 났다. 뼈 담으라고 놓아둔 대접이 뼈로 가득 찬다.


애교쟁이 첫째는 식탁에서 일어나자마자 할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맛있게 잘 먹었다고 고기도 많이 먹었다며 자랑이다. 그 말에 소여사는 급히 먹고 체하지 않을까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지 그랬냐며 걱정 담긴 말을 하신다. 이 재미로 주말까지 손주들 먹이려고 요리를 하시는 거겠지.  


돼지 등뼈는 비싸지 않은 부위지만 잘 요리해서 먹으면 고기가 부드럽고 담백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소여사는 갈비 양념으로 등뼈를 졸여주셨다. 살이 많지 않아도 등뼈에 붙은 살은 부드럽고 달달해서 아이들이 좋아했다. 첫째가 김치를 넣은 조림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 이제는 김치를 넣고 더 자주 해 먹는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돼지등뼈로 뼈해장국을 끓여주곤 하셨다. 등뼈에 된장을 풀고, 부드러운 배춧잎을 넣어 끓인 뼈해장국은 사골처럼 진하면서도 고깃국다운 든든함이 있었다. 뼈에 붙은 살을 발라내서 국물에 다시 넣고 밥을 말아먹으면 고기와 배춧잎이 같이 씹혔다. 된장국도 아니면서 고깃국도 아니면서 그 중간쯤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큰 찜솥에 하나 가득 끓여도 금방 동이 났다. 사실 등뼈 때문에 양이 많아 보이지만 살을 발라내고 나면 실제로 얼마 되지 않은 양이었을 것이다.


생전 그런 말을 하지 않던 남편이 이 음식은 어머니께 배워두어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첫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니 엄마인 내가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싶어 소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레시피를 다시 물었다. 소여사는 신이 나서 요리 순서를 읊었다. 소여사가 말한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등뼈를 물에 담가 핏물을 뺐다가 물을 넣고 한 번 끓여낸다. 불순물이 든 물을 따라버리고 다시 물을 가득 채워 한 시간여 폭폭 끓인다. 사골보다 옅지만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그 물을 다시 차가운 곳에 두고 식히면 위에 얕은 기름이 뜬다. 돼지등뼈에는 기름기가 적어 뜨는 기름도 별로 없건만 아이들 먹일 거라고 그 기름까지 수저로 걷어낸다. 그 후에 김치를 포기째 넣고 마늘, 버섯가루, 양파 등을 넣고 40분여 삶아낸다.


전화를 끊고 나자 소여사가 곁에 있는 동안 내가 등뼈를 사서 요리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첫째가 가장 좋아하는 등뼈김치찜은 엄마표가 아니라 할머니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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