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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Apr 20. 2020

엄마의 탄생과 아빠의 태동

- 만들어지는 부모


 이런 미친...... 욕이 튀어나올 만큼 아픈 고통 끝에 아기가 여자의 몸속에서 드디어 빠져나오고, 묵직한 태반까지 빠져나오면 여자는 ‘엄마’로 다시 탄생한다. 연약한 울음소리와 함께 여자의 가슴 위로 안기는 아기의 몸을 받아 안는 순간 여자는 직감한다. 


‘엄마가 되었구나!’     


그 고통을 오롯이 여자 혼자 겪는 동안 밖을 서성이며 안절부절못하던 남자는 들어와 탯줄을 자르라는 의사의 부름에 말 잘 듣는 부하 직원처럼 얌전히 탯줄을 자르고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하는 표정으로 아기를 받아 안는다. 남자는 감동했겠지만 여자는 ‘출산 후 처치’를 하느라 남자의 감동 따윈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모자동실이나 가족실이 아닌 이상 산후조리원에 있는 2주 남짓의 시간 동안 남자는 손님처럼 들렀다 가기를 반복한다.   

   

우리 집 남자는 애는 내가 낳았는데 축하는 자기가 다 받고, 출산 턱을 내면서 산후조리원에 술을 마시고 찾아와 산모 침대를 떡하니 차지하고 누워 자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조리원에서 나와 집에 돌아와서도 출산휴가를 받은 나는 아기와 함께 자고, 출근을 해야 하는 신랑은 안방에서 편히 취침을 했다. 산후조리를 해주던 친정엄마가 만들어 놓고 가는 음식으로 매 끼니 잘 챙겨 먹고,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안아줄 때 뽀뽀뽀만 열심히 하는 것으로 신생아기를 넘겼다.  

    

이런, 불공평한!이라는 생각은 수시로 들었지만 그때는 그걸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을 만큼 내 앞에 닥친 현실이 깜깜했다. 아기와 단 둘이 남겨지는 낮 시간 동안 아기가 잠들면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쫓기듯 밥을 먹었다. 잠깐 눈 좀 부치려고 하면 아기는 이제 잘 만큼 잤다는 듯 일어나 울었다. ‘엄마’도 사람인데 어찌 짜증이 안 날 수 있겠는가. 

예민해지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 그땐, 그걸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괜찮은 척하느라 애썼다.      


나, 괜찮은 엄마야. 

하루 종일 아이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얼마나 잘했다고. 

퇴근한 신랑 앞에서 자랑하듯 하루의 일을 쏟아내는 것만이 지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푸념이었다. 

다른 신생아와 다를 것 없었을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까칠한 아이로 둔갑해 하루 종일 엄마를 힘들게 한 아기로 변해있었다.      


다행히 신랑은 ‘그게 뭐가 힘들어? 네 아인데? 나도 일하느라 힘들었어.’ 같은 말들을 내뱉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으로 탈바꿈하고, 기저귀 한 번 갈아주고, 분유 한 번 먹여주는 걸로 자신이 할 육아는 다 했다는 성취감까지 느낄 수 있었을 거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좀 어려.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라는 여자들에게 때때로  

남자의 서투름은 여자보다 낮은 정신연령 때문이라는 말로 좋게 포장된다. 

그러니 더딜 수밖에. 더 늦어질 수밖에.      


여자는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가 되지만 남자는 그제야 꾸물꾸물 아빠로 태어날 준비를 한다. 

남자에겐 아이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해졌으니 힘들겠구나 하는 시선이 보태지지만, 여자에게는 아이를 잘 먹이고, 키우고, 가족 부양하느라 힘든 남편 챙기고, 집안일도 잘해야 하는 ‘엄마는 다 그래’라는 사회적 강요가 덧붙여진다.      


같이 사는 남자가 유독 가부장적이거나 못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 역시 자연스럽게 학습된 일반적인 유형의 남자일 뿐인 거다. 


‘엄마’ ‘아빠’의 역할을 규정짓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걸 직접 경험해 본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육아는 개인적인 가정사. 집안의 문제는 가족끼리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모든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였는데, 꾸역꾸역 스스로 해결하려고 무던히 애쓰며 그 시간들을 견딘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고민을 나눠요’라는 게시판을 만들어 두었다. 누구든 고민을 털어놓고 싶을 때 글을 남기면, 고민에 도움이 되는 책을 추천해 드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육아도 힘들지만 남편과의 관계 때문에 더 힘들다고 털어놓는 분들이 많았다.    

  

바쁜 회사일 때문에, 사회생활이 힘들다는 이유로 육아와 집안일은 아내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 때문에. 아내가 하는 일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무시하는 남편의 태도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조금씩 쌓인 불안과 서운함으로 서로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부부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라고 달랐을까. 개인의 시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부부는 연애 기간 동안 함께 있으면서 각자 다른 일을 하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함께 있을 때 불편하지 않고, 피로하지 않다는 게 결혼을 생각하게 했던 이유 중 하나였을 만큼.      


아이가 태어나자 온 우주가 뒤집어지는 것 같은 기이한 경험을 하면서 엄마인 나는 아침인지 밤인지 분간도 안 될 만큼 어지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남편의 일상은 그 이전과 별 차이 없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괜히 얄밉고 억울했던 시간들을 있었다.      


착한 아내 콤플렉스라도 걸린 듯 내 시간은 포기했으면서도 한 주 내내 직장에 나간 남편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주말이면 아이를 안고 친정으로 갔다.      

 

참는 게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내 감정을 숨기고 서운한 마음을 참고 혼자 삭이느라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야 번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가 뭐 하는 거지?’      

생각해보면 남편이 주말에 나한테 친정 가라고 등 떠 민 것도 아니었잖아. 

아이 안 보겠다고, 힘들다고 투정 부린 것도 아니었잖아.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고 잔소리를 한 것도 아니었잖아.      


내가 스스로 해놓고 마치 피해자가 된 것 같은 감정에 사로 잡혔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나서야 조금씩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몸에 습득된 전형적인 ‘엄마’ ‘아내’ 역할을 주입하고 살고 있었던 거다.      


요즘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육아와 가사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시선은 여전한 듯하다. 아무리 이건 아니라고 외쳐도, 집안에서 같이 사는 사람과의 갈등만 붉어질 뿐이었다.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어쩌면 아무리 노력해도 끝까지 바뀌기 힘들다면 어떡하지? 그냥 순응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도저히 참기 힘든 순간에 가서야 내가 바뀌기 전에는 누구도 바뀌지 않는다는 명확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후부터 적절하게 시간을 배분해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신랑에게 시간을 내어준 만큼 나의 시간도 당당하게 확보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와 신랑 둘만 놔두고 나가도 될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두 번 해보니 아이와 신랑만 남겨진 집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Image by Free-Photos from Pixabay


 ‘아이가 엄마 껌딱지라서요.’라는 말은 반대로 ‘아이가 아빠 껌딱지라서요.’라는 말도 가능하다는 게 아닐까. 아빠와 아이의 둘만의 시간의 두려워했던 건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마음을 내려놓자 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둘 만의 시간에 괜히 안절부절못하던 불안함도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시간들을 건너며 깨달은 것은, 안타깝게도 아빠의 태동이 끝나는 시점, 신랑이 진짜 아빠로 태어나는 순간이 길어지거나 짧아지거나 하는 건 엄마인 내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알아서 해주면 참 좋겠지만, 이제 아빠로 막 태어났으니 먼저 엄마로 태어난 내가, 귀찮더라도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해주어야 했다. 적어도 사회생활을 적당히 할 줄 아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시행착오를 거치긴 하겠지만 아내가 알려주는 육아 매뉴얼대로 잘 따라올 것이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자신만의 육아 매뉴얼을 만들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적절히 잘 활용하게 될 것이다.      


‘엄마인 내가 조금 더 해야지, 내가 조금 더 희생해야지, 같은 생각 버리기.’


나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그리고 그 생각을 응용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아빠의 육아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무 강요하지 말고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려주기(엄마들 속 타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잔소리와 비난은 아빠 육아의 최대 적이다). 


아이와 아빠가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아이와 아빠 단 둘이 있는 시간을 불안해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빠의 육아법을 인정하기(인정과 칭찬은 아빠를 춤추게 한다).      


마지막으로 

육아와 결혼생활은 장거리 레이스임을 잊지 않기.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더라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고 애쓰지 말고, 잘못 들어선 그 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엄마의 뱃속에서 힘차게 발길질을 하며 태동을 하던 아기는 때가 되면 스스로 힘을 내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아기는 태어나고, 자신 몫을 살아간다.      


그러니 아빠도, 곧 진짜 아빠로 태어날 것이다. 언젠가는(이라는 말에 힘이 실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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